냉소주의?

박가분 님의 "최장집주의자들에게 답한다 - 왜 최장집의 이론은 오늘날 하나의 유혹인가?"를 읽고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 박가분 님 혹은 다른 분들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하 존칭은 생략한다.

박가분은 최장집의 정치적 태도를 냉소주의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최장집은 정당정치의 회복을 통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꾀하면서도, 정작 실천적으로는 손학규라는 '철새 정치인'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이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가분이 제시하는 냉소주의라는 개념의 정의가 그렇다면 읽는이로서는 우선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는 이러한 방식의 냉소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런데 박가분이 쓴 다른 글을 펼쳐보면, 그것에서 박가분이 제시하는 현실에 대한 해법 역시 같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평도 이후 - 민족주의의 재발명을 위하여"를 보면, 박가분은 북한에 동조적이지 않은 한국의 진보파들 역시 '분단모순'을 우회할 수 없으며, 남한과 북한의 민중들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진보파들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입장을 편다.

정당정치의 개혁이 정당정치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또 실제로는 완벽하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건 정당정치 내의 어떤 현실정치인을 지지하는 최장집의 선택이 '냉소적'이라면, 마찬가지로 분단모순 속에 살아가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하게 그러할 수 없으며, 그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시인 김수영처럼 '김일성 만세다, 이 개새끼들아'라고 외치는 행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후자를 권유하면서 전자를 비판하는 행동은, 적어도 내 눈에는, 비일관적으로 보인다. 양자 모두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현실 '속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천적 행위의 양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장집이 손학규를 지지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정치학자가 집어들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이긴 하다.)

이 의문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는 박가분의 '냉소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엄밀하지 않거나, 혹은 자체적으로는 확고한 용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용될 뿐인 그러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의문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철학, 혹은 '이론'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지식과 이해가 미흡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떠오르는 의문을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므로, 기록을 겸하여 블로그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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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정태의 블로그 : 2010.10.10 - 2012.07.18 2012-07-18 23:57:01 #

    ... 2-3. DOMINO 동인 활동. 3. 이 블로그는 2011년 8월 17일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날 제가 2사단 지역대에 소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군인의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우람'이라는 분이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보시면 아시다시피 저 글은 '정치의 이론적 해석'에 대한 글이지 ... more

덧글

  • 드래곤워커 2011/02/06 08:11 # 답글

    군대에서도 블로깅하네.
    군대 생활 어떠세요?
  • 노정태 2011/02/06 13:08 #

    군인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지만 블로그를 할 수 없지는 않으니까요. 군 생활이야 뭐, 다들 그렇죠.
  • 김궁금 2011/02/06 12:06 # 삭제 답글

    군대 있을때는 정치관련글 안쓰신다고 하시더니 박가분님 글 보고 불끈하셨나보네요.
  • 노정태 2011/02/06 13:03 #

    이 글은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해석하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Shuri 2011/02/06 12:07 # 삭제 답글

    최장집주의와 박가분님의 냉소주의 비판(주체사상의 재발명!)이 형식적으로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즉 둘 다 '냉소주의'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전자를 비판하고, 후자를 옹호하는 것은 비일관적이라는 블로그 주인장님의 의문(특히 4, 5 번째 문단)이 저는 잘못 제기된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자 모두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을지라도 노력하라!'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박가분님의 비판은 오히려 최장집주의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 현실, 즉 의회 민주주의적 제도정치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를 의문에 부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상식적 감각이 이야기해주듯이, 둘은 매우 다른 강도를 가진 현실일 것입니다.
  • 노정태 2011/02/06 13:06 #

    그렇게 따지면, 북한 문제에 있어서 박가분 님보다 훨씬 '래디컬'한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박가분 님이 가지고 있는 대북관 및 통일관을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인지 의문에 부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즉 박가분 님은 의회민주주의가 왜 얄팍한 것인지를 증명하거나, 자신이 주장하는 대북관의 전제가 되는 현실이 왜 강고한 현실인지를 입증해야 하는데, 최장집 관련한 글의 말미를 보면 그런 노력은 없이 '상식'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장면에서 매우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상식'이라는 단어가 2011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서 가지고 있는 함의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 Shuri 2011/02/06 14:24 # 삭제

    물론 가능하지요. 훨씬 더 래디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알아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상식적 감각에 의해) 생각합니다만, 잘 제기된 의문이 나온다면 매우 고맙겠지요. 제가 위에서 단 답글의 요점은 정세를 판별하는 데 형식적 기준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노정태님은 제 답글에 대한 답글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형식주의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형식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 이것이 제가 상식적 감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의회민주주의가 왜 얄팍한 것인지" 또 "대북관의 전제" 등등을 밝히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일 수 있지만, 어차피 하나의 짧은 글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전제 탐구의 절차는 현실적으로 어디선가 멈춰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쓰는 모든 글들은 과거의 선배들이 이룩해놓은 작업들을 비롯하여 과거에 우리 자신이 쓴 다른 글들 등등과 복잡하게 누적되고 얽히고 섥힌 결과물이 아닙니까? 현재 쓰려는 글이 그런 복잡한 결과물들의 연관을 어느 선까지 추적해서 보여줘야 할지는, 저자의 의도와 그 글이 유통될 사회적 실천의 맥락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기서 형식적 기준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노정태 2011/02/06 22:07 #

    '형식성'과 '상식'을 대조시키고 양자 중 한쪽의 편을 들어야만 한다면, 저는 '형식'의 편에 서는 것이 훨씬 '지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언가에서 형식을 추출하고 그것을 따라 다른 것을 탐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보편성에의 인식과 추구를 담고 있는 반면, '상식'을 거론하는 것은 특정한 맥락과 관계 속으로 함몰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 특히,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상식'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정치적이며,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것은 박가분 님이 주된 논적으로 삼고 있는 '개혁파'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상기하실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박가분 님의 글을 '지적으로'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어떤 길을 택해야 하겠습니까? 그와 비슷한 또래로서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상식'에 기대는 것이 첫 번째 길이고, 그의 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형식을 추출한 후 서로 맞부딪쳐보는 것이 두 번째 길입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첫 번째 길을 택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거나 지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는 인터넷의 논평자들이 '각자의 상식' 안에 함몰되는 결과를 쉽사리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습니다. 박가분 님의 그 글을 '박가분 B'가 보았을 때, 과연 박가분 B의 입에서 '우리는 두려움 없이 저 '상식'에 대해 질문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안 나오겠습니까?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당연히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 지점에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 Shuri 2011/02/06 22:44 # 삭제

    노정태님은 지금 제가 특수한 맥락에서 사용한 '형식'이라는 말을 그 맥락에서 떼어내, '형식 일반'으로 확장시킨 다음 상식과 대립시켜 논의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 일반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형식과 상식을 대립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형식을 이해한다면, 상식 역시 형식의 일종이 될 것입니다. 저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오해의 소지 없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박가분님의 글에 대한 님의 의문이 잘못된 형식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단어를 적들이 쓰고 있다는 것이 지금 이 논의의 맥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앞에서 말한 '형식'과 마찬가지로 탈맥락화를 통한 비약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무튼 '상식'이라는 단어가 적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그 단어를 쓰는 것은 적에게 유리할 뿐이라는 것이 님의 진단이라면, 저는 그저 의아할 뿐입니다. 전제도 결론도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오히려 그 상식이라는 말을 우리한테 유리하도록 가져와야 한다는 결론이 저한테는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아무튼 이미 박가분님이 본인의 블로그에 새로운 장문의 글을 썼으니, 노정태님의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 노정태 2011/02/06 23:13 #

    저는 제가 Shuri님이 말씀하신 '형식'이라는 단어의 맥락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제가 박가분 님께 돌려드린 답글을 보시면 그 형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차원의 형식인지에 대해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형식을 이해한다면, 상식 역시 형식의 일종이 될 것"이라는 Shuri님의 말씀에는 선듯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본다 한들, 상식은 결코 형식이 되거나 형식성을 띄지 못합니다.

    제가 박가분 님의 '상식'이라는 단어를 놓고 약간의 인상비평을 덧붙인 것은 일종의 기우 때문입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글 쓰고 읽는 사람들 속에서, '상식'과 같은 지적이지 않은 어휘가 나왔을 때, 완곡하게나마 서로 우려의 헛기침 소리를 내어주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것은 Shuri님이 적절히 지적하셨다시피 이 논의 자체와는 큰 상관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Shuri 2011/02/07 00:10 # 삭제

    다른 논점들을 반복하는 것은 이미 제 소관이 아닌 것 같고 불필요해 보이기 때문에, '상식'의 지위에 관한 이야기만 덧붙일까 합니다. 이쯤되면 이미 애초의 논점에서 너무 멀리 온 것 같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식'을 정확히 칸트적인 의미에서 '공통감각'과 같은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밑에 칸트로 석사논문을 쓰셨다는 이야기도 보이고 해서 말입니다). 칸트 자신이 <프롤레고메나>에서 공통감각을 "상식이자 정당한 판단을 내리는 한에서의 일반적인 지성"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물론 <판단력비판>에서의 설명은 좀 특수한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그것은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의 행위(인식도 포함한)를 할 때 암묵적으로나마 상정되어야만 하는 규범성을 의미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규범성은 '추상적'이며 내용을 갖지 않지만, 우리는 행위의 구체적인 상황마다 그것을 적용해야 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상식은, 특정한 내용을 가진 명제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내용들을 얻기 위해 적용해야만 하는, 이러한 희미한 원리에 더 가깝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를 '형식'이라고 볼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 노정태 2011/02/07 01:06 #

    일단 박가분 님이 언급한 '상식'은, 그의 새로운 글이 말해주는 바, '공산주의적 상식'이므로 지금 저와 Shuri님이 나누는 대화는 본래의 맥락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편 칸트에게 있어서 공통감각, 즉 sensus communis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우선 비판의 대상으로서의 공통감각 혹은 상식. 즉 한낱 다수의 의견에 불과할 뿐인 그런 '상식'. 칸트는 그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한편 순수이성비판의 일부와 판단력비판에 등장하는 취미 판단의 전제가 되는 공통감각이 있습니다. 그 경우가 대체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데, 왜냐하면 취미 판단의 보편적 타당성의 근거로 한낱 공통감각이 제시된다는 것은 칸트의 전체 철학 체계에서 큰 파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Shuri님은 본인이 말하는 '공통감각'이란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가 말한 공통감각 개념이 아니라고 하셨으므로, 저로서는 적잖이 의아할 뿐입니다. (판단력 비판을 포함하지 않는) 칸트의 체계 하에서 상식 혹은 공통감각, 즉 다수가 동의하고 동조하는 무언가는 인식적, 도덕적 차원에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공통감각 혹은 상식이 Shuri님의 말씀처럼 "규범성"을 지닌다면, 그룬트레궁에서 그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도덕적 준칙들을 단지 '형식적 원리'인 정언명법으로부터 도출해내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칸트의 공통감각 개념을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의 행위(인식도 포함한)를 할 때 암묵적으로나마 상정되어야만 하는 규범성을 의미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서술은, 적어도 칸트에 대한 저의 이해의 범위 내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Shuri 2011/02/07 01:46 # 삭제

    제가 상식을 "정확히 칸트적인 의미에서 '공통감각'"이라고 쓴 것은 다시 생각해 보니 불필요한 오해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 나았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기에 애초에 칸트가 '상식' 자체에 대하여 약간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상식 혹은 공통감각을 한낱 의견들의 집합으로 보고 비판하는 때도 있지만(물론 이때가 더 많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규칙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몇몇 곳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측면을 강하게 받아들이면, 이미 헤겔 쪽으로 흐르는 것인데, 제가 약간 편향되게 본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칸트에 관한 이해를 제쳐둔다면, 상식이 우리의 행위에 희미하게나마 규범성을 제시하며, 그런 의미에서 형식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저의 이해가 별로 무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 박가분 2011/02/06 14:42 # 삭제 답글

    안부 묻습니다. 군대 가셨다고 들었는데, 생활은 평안한지요.

    질문에 대답하자면, 저는 이 자리에서 냉소주의를 조금 더 엄밀한 정치저 맥락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진보주의자들에게서 비쳐지는 냉소주의란, 곧 진보 내지는 좌파 정치가 '승리'할 수 없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우회'하는 저 모든 타성과 관행들입니다. 저는 좌파들이 '승리'하고, '권력'을 잡고, 최소한 50년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에서, 이러한 승리에 대한 의지와 전망을 이론적으로 보충하려는 저 최장집주의자들의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냉소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분단현실'을 우회할 수 없다는 저의 생각과, 최장집주의 일반에 대한 비판은 전혀 '동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최장집주의자들이 '규범적'으로 파악하는 의회정치나 대의제의 모델들이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정치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을 규범적 이론을 통해 우회하는 저 관행들이 '냉소적'인 것이지요.
  • 노정태 2011/02/06 22:36 #

    안녕하세요. 군대에서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박가분 님이 '냉소주의'라는 개념을 정치적인 차원에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보주의자들에게서 비쳐지는 냉소주의란, 곧 진보 내지는 좌파 정치가 '승리'할 수 없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우회'하는 저 모든 타성과 관행들"이라면, 이른바 NL 진영에 속하지 않는 진보파들이 남한과 북한의 민중들이 함께 저항하는 그날을 '상상'해보는 게 어떨까, 라는 박가분 님의 제안 역시 제게는 "진보 내지는 좌파 정치가 '승리'할 수 없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우회'"하는 것 외에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남과 북의 분단이 한국 진보파의 눈앞에 놓여진 현실인 것처럼, 이미 충분히 뿌리내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역시 한국 진보파의 눈앞에 놓여진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의회정치나 대의제의 모델들은 한반도의 분단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의회정치와 대의제의 모델들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의회정치 혹은 대의제의 모델에서 벗어난 '진정한 정치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기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장집은 애초부터 박가분 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정치'의 실현이 아니라 대의제 내에서의 정치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그가 '통치적인 것'에만 집중한다고 그것을 '회의주의적 태도'라고 비판하는 것은 건전한 논증의 방식이 되지 못합니다. 최장집은 더 좋은 대의제를 위해 현재 주어진 대의제 안에서 연구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그가 '이론적 우회'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헤겔에 대한 논문을 쓰는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칸트에 대한 이론적 우회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논점일탈에 지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최장집의 논의나 박가분 님의 분단모순에 대한 논의나, 어떤 하나의 현실적 과제에 대해 그것을 '내부로부터' 변화시켜나가자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편의상 이것을 '헤겔적 태도'라고 불러보겠습니다. 그런데 최장집에 대해서는 그가 의회정치 혹은 대의제의 '외부'를 논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분단모순에 대해서는 내부로부터 고찰하고 실천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박가분 님은 취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러한 양면적인 태도가 특정한 정파 혹은 지적 그룹에 대한 감정적 요소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박가분 님은 최장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만, '정치'라는 진리가 플라톤적인 것처럼, 즉 대의제를 넘어선 또 하나의 '진리'가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단모순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분명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진리가 있고 우리가 그것을 정치의 내부로부터 탐색할 수 있다면, 그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람들은 '대의제의 외부에 뭔가 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의제 자체에 천착하여 그것의 변증적 귀결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앞서 말했듯 저는 그래서, 최장집과 그의 영향을 받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가분 님의 단정짓기가 상당히 정치적 혹은 정파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2011/02/06 17: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11/02/06 22:36 #

    무슨 말씀이신지?
  • 김궁금 2011/02/06 17:10 # 삭제 답글

    근데 딱히 정치관련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정당활동은 못하지만 관련글을 쓰는걸 막지는 않을텐데요.
    박가분님의 대부분 포스팅은 군시절에 책 읽으면서 쓰던거 아니였나요?
    군대에 있는 동안 쓰지 않으시려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 노정태 2011/02/06 22:37 #

    저는 정치에 대한 글을 쓸 때, 대체로 '이론'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상당히 편파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직업공무원의 정치적 의견 표출조차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실정상, 군인인 제가 정치적인 글을 쓰는 것은 삼가야 할 일 중 하나겠지요. 대신 이번 경우처럼 담론적인 경우에는 목소리를 내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 ..... 2011/02/07 01:38 # 삭제 답글

    헐 군대 계셨군요 (....)
    저도 군인 신분으로 정치 관련 글을 쓰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전계통 등 기밀과 관련된 보직을 받으셨으면 더욱 그렇지요.
    확실히 대한민국은 (혹은 군대는) 아직 그렇습니다. 일개 병졸한테 요구하는 것이 많죠. 쳇.

    여하튼. 군 생활 무사히 잘 하고 나오십시오.
  • 노정태 2011/02/17 16:03 #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늘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ㅋㅋㅋ 2011/02/07 09:10 # 삭제 답글

    미국 싫다면서 까투리 들어가서 널럴한가보네 ㅋㅋ
  • 노정태 2011/02/07 14:13 #

    '미국 싫어'라고 외치는 반미주의자였으면 대체 어떻게 <Foreign Policy> 같은 잡지를 만들고 있었겠니. 좀 성실하게 악플을 달아봐.
  • ㅋㅋㅋ 2011/02/07 14:23 # 삭제

    미국물 먹더니 생각 바뀌었구나 ㅋㅋㅋ


    내 그럴 줄 알았지.
  • 노정태 2011/02/07 14:54 #

    빈정거리는 건 그렇다 치고, 시간 순서부터 잘못된 듯.
  • 호룰로 2011/02/07 17:38 # 삭제 답글

    이쁜 고양이는 어디로 입양 됐나요?
    아래 책 리스트 보니 고양이 관련 서적도 있는데 보고 싶으시겠네용
  • erte 2011/02/08 13:39 # 삭제

    아아 입동이와 가을이! 잘 있는거죠?

    주인장님도 군생활 잘하고 계신거 같고 ㅋ
  • 노정태 2011/02/08 22:07 #

    호룰로/ 구조해냈던 어린 고양이는 오래 전에 다른 분께 보냈고, 제가 키우던 녀석들은 한 친구 집에 있습니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erte/ 잘 있고말고요. 군생활이야 뭐 다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 명랑이 2011/02/09 02:29 # 답글

    모든 정치적 문제의 해결이 대중동원을 통한 혁명을 통해서 된다는 도그마가 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쓴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봅니다.
  • 노정태 2011/02/17 16:09 #

    물론 '조심스러운 추측'이 가능한 지점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논의가 더 진전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 댓굴러 2011/03/05 14:42 # 삭제 답글

    그래도, 시절이 하수상하니, 이런 글은 전역하시고 올리는 편이 좋겠습니다. 마음 속에서 글쓰기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비밀 블로그라도 만들든지요.
  • 노정태 2011/04/01 16:01 #

    정치적인 '욕망'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들은 대부분 체제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부해주신 말씀 감사히 듣고, 건강하게 잘 지내겠습니다.
  • 건전유성 2011/05/04 03:32 # 답글

    아휴, 정태씨 오랜만. (내 이름은 닉네임에서 앞 2글자 빼면 대충 짐작 가능)
    몸 성히 제대하시고, 제대후에 술 먹읍시다.
  • 용태 2011/06/10 18:54 # 삭제 답글

    공동생활전선에서 글을보고 맥락을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박가분님의 카페글과 덧글들을 보니 최장집주의에 대한 박가분씨의 태도가 일견 정파적이라는 노정태님의 진단에 수긍하게 되는군요.

    잘봤습니다
  • 2014/10/17 10:11 # 삭제 답글

    모두 굿나잇. 필자가 글을 읽는 동안 지출하고 훌륭한 포럼을 발견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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