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론 메모

아까 모 편집자님과 만나서 식사하던 중 나온 이야기.

'대학생 말하기 강의'라는 책이 있다고 하자. '20대 말하기 강의'라는 책을 또 누군가 낸다고 하자. 두 책을 사서 볼 독자층은 사실상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제목은 다르다. 나는 후자가 전자에 비해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20대 문제'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대학생들이 겪는 문제가 있고,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 어쩌면 객관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20대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아직도 읽지 않았다면, 당장 검색해서 한겨레21의 '노동OTL' 시리즈를 정독할 것).

특히 조선일보. '386세대'라는 단어를 띄움으로써,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을 화이트칼라 사무직 직원 및 인근 엘리트들 사이의 세대 다툼으로 치환해버렸다. IMF 당시 30대였던, 80년대 학번을 단, 60년생들. 이른바 '58년 개띠'들에게 밀리는 세대들. 이 구조가 지금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386에게 밀리는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세대론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꺼내면서도 왜 노동문제에 무관심한지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세대론이 유의미한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문화적 담론으로 나가고자 한다면, 특정한 문화 컨텐츠를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는 단위로서의 세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인구학적으로 유의미한 지표를 만들어낼 수준이 아니라면, 보편성을 지니는 세대론이라는 것이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 나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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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세대론은 '작은 칼'이다. 작은 단위에서는 잘 들어맞는다. 가령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학생들의 세대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계기는 학부제의 전면적 도입 및 실시였다. 그것이 기존의 학생 조직의 재편을 강요하면서 와해시키지 않았다면 현재 대학가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 법조인들에게는 곧 들이닥칠 로스쿨 세대가 기점이 될 터이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낸 세대들도 영상원이라는 하나의 교육기관이 생긴 것과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세대론은 작은 단위를 분석할 때 유효하다. 문제는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거대담론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첨언2: 세대론에 한국의 식자층이 우르르 쏠려간다는 것 자체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의 담론 지형이 얼마나 협소하고 위축되어 있으면, 하나의 섹트를 분석할 때에나 맞아떨어질 이야기에 글 읽는 자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동의하거나 부정하는 일이 발생한단 말인가. 세대론을 유지하고 싶다면 세대론을 분해한 후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젊은이들의 빈곤 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88만원 세대'라는 히트상품을 버릴 각오를 하고 논의를 구성해야 한다. 담론적 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덧글

  • 말코비치 2009/12/30 15:26 # 답글

    세대론은 사기입니다. 세대 차이는 사회의 근본 차이와 무관하기 때문이죠. 물론 현실에서 '386' 상사들에게 치이는 2~30대 직장인들의 '즉각적 공감'을 살 수는 있을테고(그래서 책도 많이들 팔아 먹었겠죠)
  • 노정태 2009/12/30 15:39 #

    제가 글을 너무 거칠게 쓴 것 같군요. 몇 가지 설명을 첨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부분도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그렇게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합니다.
  • 말코비치 2009/12/30 16:13 # 답글

    블로그인데요 뭘.. 물론 '노정태'님의 블로그니까 조금 거칠게 쓰면 안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한 "작은 단위"는 '개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윤도현이 88만원 세대를 가지고 노래를 많이 팔아먹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담론이 되어 '사회 갈등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안타깝군요.
  • 노정태 2009/12/30 16:46 #

    '근본 원인'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대상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개별적인 미시 담론들이 살아날 수 있는 여지도 생길테니 말이죠. 세대론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세대론으로 이 사회의 많은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 같아요.
  • ㄲㄲ 2009/12/31 18:48 # 삭제 답글

    근데 왜 탑 100 안됐나요
  • 노정태 2010/01/02 01:31 #

    아무도 추천을 안 해주니까요. 그러나 백괴사전에 따르면 본인은 이글루스의 준귀족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http://uncyclopedia.kr/wiki/%EC%9D%B4%EA%B8%80%EB%A3%A8%EC%8A%A4#.EC.A4.80.EA.B7.80.EC.A1.B1 이 부분을 참조하세요.
  • 라임 2009/12/31 22:58 # 답글

    공감합니다.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은 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20대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지표에 불과한 것에 그토록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은, 지적하신 것처럼 담론의 위축을 보여 주는 것이겠지요. 이런 위축의 이면에 청년 세대(정확히는 대학생)가 사회 변혁의 주체라는 믿음, 또는 6-80년대 대학생 운동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 운동 대망론이랄까요. 이것 자체가 위축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노정태 2010/01/02 01:34 #

    담론의 위축이 발생하게 된 이유를 찾는 대신, 그 결핍을 매꿔줄 누군가를 찾으려고만 하거나 누군가에게 왜 그 결핍을 채워넣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한, 지금의 10대들도 같은 식의 조리돌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세상이지요.
  • 키린 2010/01/01 14:05 # 답글

    조선일보는 새해벽두부터 설득력도 없는 G세대라는 이상한 네이밍을 붙인 세대론을 주장하더라구요.
  • 노정태 2010/01/02 01:34 #

    그런 거 되게 좋아한다니까요.
  • 노찾사 2010/01/01 14:20 # 삭제 답글

    G세대란 용어는 조선일보가 주장한 건 아니고 늘 그렇듯이 이미 몇년전 부터 기업 마케팅 전략상 등장한 새로운 상품 타겟층의 명칭이고 이제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닌 용어입니다. 조선일보의 새해 맞이 조사에서 지난 100년간 가장 훌륭한 한국인에 노무현 대통이 1위로 뽑힌건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단 증거겠죠. 물론 딴나라 지지층 이나 0.8% 자칭좌파 들은 혀를 끌끌 차겠지만 서도..그런면에서 보면 딴나라 노땅 들과 0.8% 자칭 좌파들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단 사실이 신기하죠..?? 마치 거울을 보는 것 처럼요.
  • 노정태 2010/01/02 01:35 #

    저는 그런 단어 처음 들어봤습니다. 마케팅 쪽에서는 가치가 있는 단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신문 매체에서 사용하는 것은 다른 맥락이겠지요. 마케팅적 헛소리가 진지한 담론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요즘 분위기 중 하나인데, 정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노찾사 2010/01/02 07:51 # 삭제

    본인이 첨 들어 본 건 담론의 가치가 없다..?? 역쉬 노정태는 기술교육이 어울려. 애써서 담론장에 한 쪽 다리 걸치지 말고 결단을 내리는 게..
  • ellouin 2010/01/01 14:59 # 답글

    장사가 잘 되니까요. ㅎㅎ
  • 노정태 2010/01/02 01:35 #

    그나마 앞으로는 어찌 될런지...
  • 몽몽이 2010/01/01 15:28 # 답글

    결국 이것도 변형된 국개론의 일종, 아니 국개라고 까다 안 통하니까 변명으로 만들어진 회피 논리인가? 세대를 잘못 분류해서 말이 씨가 안먹혀 이런거네? 여기에 적절한 우화는 '여우와 신포도' 되겠다.
  • 노정태 2010/01/02 01:36 #

    그래, 바로 그런 거지. 새해에는 이렇게 쓸모 있는 리플을 달도록 해봐.
  • 몽몽이 2010/01/02 01:47 #

    그러니까 결국 저 위에 적은게 다 여우가 신포도 타령하는 거라고.
    배고픈 여우가 제 현실을 깨우친다면 명바기 기술 스쿨이라도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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