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20대의 '삽질 징용'을 꿈꾸는가?

MB는 20대의 '삽질 징용'을 꿈꾸는가?
[기고] 무엇을 위한 기술 교육인가


기사입력 2009-12-28 오전 10:12:30


정치인의 발언은 그 뜻을 잘 새겨서 들어야 한다. 면밀하게 계산된 복심이 숨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대통령의 발언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청와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인문대 나온 학생들, 특히 지방대 나와서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기술 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잖은 이들이 '인문학의 가치를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분노하였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 이 대통령이 '기술'이라는 단어로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이 대통령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또는 성취하는 방법이며, 더 넓게는 인간의 욕구나 욕망에 부합하도록 주어진 대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인간 행위를 뜻한다. 이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주창하는 '사랑의 기술'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어디까지나 청년 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기술 교육'을 논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배워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술로 그 범위를 한정짓도록 하자.

그렇다면 그 기술은 높은 수준의 숙련도를 요하는 그런 기술이 아니다. 가령 인간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주입하는 '원천 기술'을 생각해보자. 그런 고부가가치 기술은 애초에 많은 이들이 배울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오랜 숙련 기간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도 재능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는 그런 기술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만드는 디자인 기술, 컴퓨터 특수 효과를 만드는 CG 기술 등이 모두 그와 같은 분류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이 대통령의 관심사가 아니다.

한편,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12년에 걸쳐 '시험 기술'을 연마한다. 해당 과목에서 다루는 학문의 진리와는 무관하게,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잘 외워서 문제에 적혀 있는 답을 찾아내는 기술 또한 '기술'의 일부이긴 하다. '시험 기술'을 잘 익힌 학생들은 대부분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사법고시를 포함한 고등고시 및 의·약대 진학을 위한 PSAT 등을 준비한다. 길게는 20년까지 이어지는 이 '시험기술'의 연마를 통해 우리 사회는 이른바 엘리트로 분류되는 고학력 기능직들을 산출해낸다. 법조인, 의사, 치과의사, 회계사 등이 모두 '기술자'인데, 물론 이 대통령은 지방대 인문학과를 나온 학생들 모두가 이런 전문직 종사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요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아니다. 이것 또한 가능성의 영역에서 제외한다.

결국 남는 것은 도배, 장판, 이삿짐 나르기, 배관 공사하기, 지붕 잇기, 사모래 치기, 시멘트 포대 나르기, 벽돌 쌓기, 비계 건설하기, 철근 구조물 세우기 등과 같은 저임금 일용직 기술일 수밖에 없다. 포클레인이나 지게차 등 중장비를 조종하는 기술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장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수를 대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교육의 소재가 되지 못한다.

결국 남는 것은 저임금 일용직 기술뿐이다. 이런 기술들의 특징은 진입 장벽이 낮은 듯하면서도 높다는 것이다. 누구나 신체 건장한 청년이라면 흔히 말하는 '노가다' 일을 할 수 있지만, 숙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금방 몸살에 걸리고 손에 물집이 잡힌다. 게다가 조금만 수준이 높아지면 아무나 할 수 없다. 노가다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지방대 나와서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인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에서 앞장서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기술 교육은, 이렇듯 논리적으로 따져볼 때 오직 세 번째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내년 상반기 경제가 회복되면 바로 현장에서 기술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라며,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모순된 현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는 것을 함께 고려해보면, 이제야 진짜 결론을 찾았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기술'이란 '삽질하는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태까진 농담이었지만 이쯤 되면 진지하게 묻고 싶다. '현장에서 기술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그 '현장'이 대체 무슨 현장인가? 내년도에 들어서 갑자기 인력이 필요할 만한 사업장이 어디인지 정부가 어떻게 아는가?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벌이는 사업의 일부가 아닌 다음에야, 민간 기업의 인력 수요에 맞춰서 정부가 "취업을 못하고 있는 대학 졸업생들 개개인에게 전부 통보"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대통령이 말하는 '인문학 졸업생들을 위한 기술 교육'이 결국 4대강 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농담처럼 떠돌던 말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농담처럼 허무맹랑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쩌면 내년에는, 나라에서 날아온 문자 받고 4대강 유역으로 삽질하러 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노정태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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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 월요일자 프레시안에 작게 실린 기고문입니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적어도 이글루스 내에서는 불필요하게 '핫'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작 그 이슈에 주목하느라 '기술'이라는 게 뭘 뜻하는지도 따져보지 않은 채 떡밥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정작 문제삼아야 할 것은 '기술'에 대한 정부와 이명박의 시각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지금 사법시험 준비하고 의대 약대 가려는 대학생들, 그게 다 기술 배우는 거잖아요. 혹은 기술을 배우기 위한 준비 단계를 밟는 것이거나. 인문대 나온 학생들도 전부 고시준비하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인데, 거기서 뭘 더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건지. 인문학에 대한 고질적인 혐오가 이 문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피드백 환영합니다.

덧글

  • 2009/12/30 00: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09/12/30 13:22 #

    그러는 본인이야말로 남들 다그치는 것 말고는 하등의 기술이 없는 화이트칼라일텐데 말이죠. 정주영 미니미가 대통령이 되니 참 피곤해요.
  • 츄이 2009/12/30 00:14 # 답글

    정말.. mb의 말.. 돌겠네요. -_-;

    이것도 무식함이라 부를 수 있을지..
    '무식함'이란 말마저 고급스레 느껴지는.. --;

    참..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
    무식하면.. 겸손하기라도 해얄텐데...
    입이라도 좀 닥치고 있든가.. --;

    이젠 mb말 일일히 반응하기도 귀찮아진다는.. -_-a
  • 노정태 2009/12/30 13:23 #

    귀찮아도 일일이 국민들이 반응을 해야 그나마 '여론'이라는 것이 형성되고 사회 담론이 흘러갈 수 있지요. 어처구니 없는 일에 어처구니 없다고 말하고, 화나는 일에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명랑이 2009/12/30 00:43 # 답글

    다가오는 총선이 마지막 기회이지 싶습니다.
  • 노정태 2009/12/30 13:24 #

    '마지막' 기회는 아닐 것 같습니다만, 국회 의석 배분에 변화가 오면 좋겠어요. 현재 민주당 하는 꼴로 봐서는 그리 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문제입니다.
  • 인문대졸업생 2009/12/30 01:55 # 삭제 답글

    인문대를 졸업한 한 무리의 백수들에게 국가가 가르치고 싶어하는 그 기술이 뭔지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가카로서는 무슨 대단한 복심을 품고 여러가지 다른 차원의 수많은 기술들을 '기술'로 뭉뚱그려 이야기했다기보다는 기술 하면 니들도 다 아는 그 기술 --그러니까 단순+숙련 노동기술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각종 전문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고시패스해서 고급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기술'로 먹고 산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드문 것처럼요.

    그 양반(은 물론이고 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기술적 카테고리가 뭔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니까 갑자기 재미있어지는군요. 아니 근데 이거 재미있어져도 되나...?
  • 노정태 2009/12/30 13:26 #

    당연히 제가 쓴 글에서처럼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지야 않았겠죠. 그러니까 그 말을 따져보고 무슨 뜻인지 짚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손쉽게 내뱉는 말의 깊은 뜻을 파해치는 것이 식자층이 해야 할 몫이라고 봅니다.
  • 샤론애필 2009/12/30 11:44 # 답글

    농담으로밖에 안보이는데 MB라면 정말 그럴지도 몰라서 무섭습니다.
  • 노정태 2009/12/30 13:26 #

    농담과 진담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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