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가라, 세종시로

[경향신문] 당신들이 가라, 세종시로


세종시 문제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3일, 정부는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기업도시’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도시에 행정기관이 들어서지 않는 것부터가 난센스라는 것은 아예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또 하나의 기업도시를 짓는 것은 극단적으로 반 환경적인 선택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경제적 이유를 접어두더라도 행정도시는 건설돼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수도를 옮겨야만 한다. 그래야만 서울이라는 리바이어던의 스프롤(sprawl) 현상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현재 암세포처럼 커져가고 있다. 이름을 다 기억하기조차 힘들 만큼 수많은 베드타운이 서울 인근에 건설됐고, 그도 모자란다는 듯 정부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해제해 추가적으로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대도시가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현상을 ‘스프롤’이라고 하며, 이것은 인간이 환경에 끼칠 수 있는 해악 중 가장 심각한 것에 속한다.

서울 주변 신도시에 살면서 하루에 한 시간 반씩 자동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은 증가하고 지구는 병들어간다. 출퇴근 시간 서울의 중심지인 종로나 강남 일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통 지체를 감수해야 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서 있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며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주변 도시를 잇는 거대한 도로는 이미 그 자체로 해당 지역에 사는 생물들에게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 대체로 동물들은 널찍한 영역을 갖게 마련이며, 십중팔구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가 그 영역을 가로지르게 된다. 야생동물을 치어 죽인 운전자들은 대체 왜 동물이 차도 위에서 얼쩡거리느냐고 분통을 터뜨리지만, 사람이 길을 놓기 전부터 동물들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이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서울 주변의 신도시들은 자동차를 이용해야만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널찍한 도로가 닦여 있고, 넉넉한 주차장이 딸린 아파트가 건설된다.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도시 자체가 보행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간단한 먹을거리라도 구입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끌고 마트에 가야만 한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스프롤 현상이 단독주택들로 구성된 주택지역의 무분별한 확장과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난립하는 신도시가 스프롤 현상의 주범인 것이다.

게다가 기업도시라니. 이미 2005년부터 지역마다 기업도시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제대로 완공돼 자립한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조선 왕조 500년, 일제 강점 36년을 거쳐 해방 후 지금까지 600년간 우리는 단 한 번도 중앙집권 체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자원이 600년간 ‘관습헌법적으로’ 수도였던 서울로만 집중되어 왔다.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최대한 ‘중앙’과 밀착해 정부 주도의 온갖 사업을 낙찰받아 수익을 챙기는 것을 뜻한다. 제 아무리 ‘기업도시’를 개발한다 한들 기업들이 자진해서 그곳으로 가야 할 ‘경제적’ 이유가 전무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아예 수도를 옮겨야 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수도를 변경하고, 입법부와 행정부 및 사법부 전부가 서울에서 떠나는 ‘사건’이 벌어져야 이 오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뿐 아니라 환경을 위해서도 그러한 변화가 절실하다. 서울 주변의 난개발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실패한 기업도시는 결국 골프장 부지로 재활용되며 인근의 환경 부담을 가중시킨다. 정부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기업들은 절대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국토의 균형발전과 정경유착 해소 및 한반도 생태의 미래를 위해 진심으로 권한다. 당신들이 가라, 세종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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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지지난주 월요일자에 칼럼이 올라왔어야 하는데, 부득이한 지면 사정으로 두 번 연기되었습니다. 다시 쓰고 또 다시 써서 만든 글인데 썩 만족스럽지는 않군요. 저는 영화 친구의 대사를 인용해서 '니가 가라, 세종시'라고 했는데 여론독자부는 그것을 '당신들이 가라, 세종시로'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전문을 다시 읽어보니 경향의 판단이 옳은 것 같군요. 그 외에는 제가 쓴 내용 그대로입니다.

스프롤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행정수도 이전이 이루어져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수도 변경이 있어야 한다는 제 주장은, 당연히 그로 인해 한국이 1극 중심 체제의 국가가 아니게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부분에 대해 어떤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조사하지는 못했으므로, 다른 자료를 접하신 분이 계시다면 정보를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글

  • Brilliant 2009/11/17 00:21 # 삭제 답글

    한겨레에 실린 글이라 아마 보셨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떤가요.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87804.html
  • 노정태 2009/11/17 02:25 #

    못 봤던 칼럼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종이한장 2009/11/17 11:08 # 삭제 답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또 하나의 기업도시를 짓는 것은 극단적으로 반 환경적인 선택이"
    라는 구절이 약간 오해할 소지가 있는 듯합니다. 자칫 수도권 이외 지역에 기업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반환경이고, 기업도시를 지으려면 수도권 안에 지어야 한다고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수도권 이외 지역이라는 말이 없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
  • 노정태 2009/11/17 17:44 #

    '기업도시'에 방점을 찍는 거죠. 행정도시를 짓고 차차 그쪽으로 수도를 이전하자는 것이 전체 논지이므로, '수도권 이외의 지역'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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