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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 박재범, 공론장으로서의 인터넷
윤계상의 '좌파' 발언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가 수그러들었다. 변영주 감독 등 진짜 '좌파'들이 나서서 분위기를 잡아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이 모종의 울분의 표현으로 그 단어를 꺼내들었을 뿐 애초에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계상의 그 발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노라면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첫째, '영화판은 원래 좌파다. 그래서 나는 소외당하고 있다'는 말을 본 사람들이 '좌파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만 말할 뿐, 그 언어의 화용이 대단히 일상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우리는 '말 많으면 빨갱이'로 간주하는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좌파는 곧 먹물이요, 유식하다는 먹물놈들은 무식한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지금도 인터넷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지 않은가. 본인이 아는 좌파의 개념은 잠시 접어두고 윤계상의 발언을 살펴보자. 그건 전혀 특별할 게 없는 표현이다. 나보다 많이 배운 먹물은 다 좌파고, 좌파는 재수없는 엘리트고, 그래서 다 싫다는 그런 수준의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둘째, 변영주 감독이 인터넷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까지 이 사건은 또 '윤계상 발언'으로만 다루어지고 있었다. GQ는 원래부터 인터뷰를 잘 하기로 유명한 매체였고, GQ 인터뷰가 다른 매체에 의해 재보도된 것도 이번에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터넷 언론들이 끼어들었고, 역시나 '네티즌 술렁거려' 같은 표현을 들먹이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GQ를 보고 흥분한 사람은 별로 없다. 포털 사이트 대문에 떠 있는 '네티즌들이 흥분했다'는 기사를 보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할 수 있는 기제를 발견하여 군중에 가담한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종합해보면 윤계상의 발언을 둘러싼 촌극은 결국 박재범 사건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재범이 한 말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든 한국인은 입만 열면 '빌어먹을 이 나라, 빨랑 돈 벌고 튀어야지'라고 궁시렁거린다. 모든 남자 고등학생들은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를 '따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다. 박재범은 그것을 친구와 이야기했을 뿐이다. 윤계상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겪어본 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누군가가 자신보다 유식한 존재라는 사실을 참지 못한다. 특히 어설프게 배웠거나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식이 죄냐?'라고 물을 때 이미 그는 무식한 자신에 대한 죄의식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뻔한 소리를 한 청년들이 왜 갑자기 공공의 적이 되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인터넷 언론, 혹은 그냥 언론의 문제가 등장한다. 대중들은 이른바 공인, 그 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연예인들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 연예인과 자신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기를, 그래서 그도 나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동시에 그 연예인이 정말 나같은 새끼일 리는 없다는 것을 믿고 싶어하기도 한다. 내가 쇼프로를 보면서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사람 냄새'를 풍겨야 하지만, 대중들은 동시에 그 연예인이 정말 나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면 가루가 되도록 깔 준비를 하고 있다.

따라서 연예인은 대중과 같으면서도 달라야 하고, 다르면서도 같아야 한다. 그 미묘한 줄타기가 무너질 때 대중들의 공격적 성향이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섹시 컨셉의 아이비가 섹스를 했다는 놀라운 사실로 인해 무너진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대체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대중들의 성향은 그렇고 연예인들은 그 속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점을 찾아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한 스타가 구설수에 휩싸이는 것은 그 자체가 보는 이에게 재미 혹은 묘한 쾌감을 안겨주고, 어쨌건 신문 판매 부수 내지는 클릭수 증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기존 매체 혹은 새로 판에 뛰어든 인터넷 매체들은 바로 그런 '껀수'를 찾아내고자 안달이 나게 마련이다.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인터넷 매체들은 더 이상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다. 대신 네티즌들의 몇몇 반응을 기사화하여 보도를 사건한다. '보도를 사건한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풀어서 설명하자면, 별 것 아닌 일을 터뜨려서 사건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박재범은 고삐리였고, 윤계상은 평범한 한국 남자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게 뭐가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윤계상은 박재범보다 좀 더 문제적이긴 한 것 같지만, 그거야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 혈기만 넘치는 나이여서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보도가 그렇게 나가기 시작한 이상, 별 거 아닌 일이었던 것이 바로 대형 사건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기자들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을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인터넷이 사생활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연예인에 대한 온갖 '소스'가 인터넷으로 모이게 되었고, 현장 취재 다니느라 바쁜 기자들보다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들이 그런 요소들을 더 잘 찾아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네티즌들이 찾아낸 연예인의 사생활을 기자가 새삼스럽게 '폭로'해서 기사 하나를 날로 먹는다. 그러면서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순간 몇몇 사람들이 보고 시시덕거리던 것이 포털 사이트 뉴스를 타고 모든 이에게 중요한 사안처럼 돌변해버린다.

윤계상 사건의 경우에는 전문적인 잡지 에디터가 인터뷰를 한 경우지만, 그 외의 기본적인 형식은 동일하다. 어딘가에서 발견해낸 평범한 사실을 '네티즌 술렁' 같은 표현을 덧붙여 인터넷 매체에서 재가공하면, 비로소 그게 진짜 사건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박재범 사건의 경우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삼지선다형으로 풀어보자. 단, 복수정답은 허용하지 않는다.

① 엄한 거 까발려서 젊은이 인생 망친 디씨 코갤. ② 그걸 뉴스랍시고 보도해서 일을 부풀린 언론, 특히 동아일보. ③ 이유야 어찌 되었건 광기의 춤사위에 끼어들어서 함께 모닥불에 땔감을 넣고 북치고 장구치며 빙빙 돌고 춤을 춘 '네티즌' 전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나는 ②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디씨의 잉여들이나 이른바 '네티즌'들은 원래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고 반드시 그러한 속성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할 어떤 당위적 의무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대중들이 연예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거나 그에 대해 나름의 탐색을 하는 것 등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연예인이라는 집단 자체가 사실상 그러한 욕망 위에 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한 미국인들의 광기어린 집착과 멸시, 동시에 쏟아지는 동경 따위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중들은 원래 그렇다.

하지만 언론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특히 한국의 주류언론은 원래 저질이었고 지금도 저질이며, 거기에 인터넷 매체들까지 끼어드니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렸지만, 언론은 대중과 달리 공공의 선을 지향해야 한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가 왔다고 한들 '공론장'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공식화된 언론 매체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18세기 이후 시민사회는 공론장에 대한 장악력을 꾸준히 잃어갔고, 대신 신문이나 방송 같은 '체계'들이 의회 민주주의의 일부로서 작동하는 공론장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18세기에는 부르주아들이 살롱이나 커피숍에 모여서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소식지를 만들어서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론'이 형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그런 영역은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지금은 사적인 공간에서의 토론이 공적인 의사 형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대신 '체계'는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 언론들이 '네티즌 반응'을 채집하여 보도를 사건하는 현상을 나는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씨인들이 개인의 사생활을 캐내 시덥잖게 시시덕거리다가 흥미를 잃으면 내팽개치는 현상은 개가 땅에 묻힌 뼈다귀를 캐낸 후 씹다가 내뱉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잡지 에디터가 심도 깊은 질문을 해서 의외의 답변을 얻어내는 것 역시, 바로 그러라고 잡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사건'이라고 굳이 보도함으로써 공론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언론들이 있다는 것이다.

GQ 인터뷰 전체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윤계상의 발언 중 골때리던 것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다. 인터뷰의 분위기 자체가 이미 범상치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들은 오직 그 '좌파 발언'에만 집중해서 '네티즌 술렁' 기사를 만들어냈다. 요컨대 '네티즌 술렁'은 인터넷이라는 '생활세계'로부터 '체계'가 지속적으로 약탈해가는 상아나 금, 노예같은 것이다.

물론 대중들은 잔인하다. 너무도 잔인한 나머지 그 말을 하는 것은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 사생활을 파해치고 잔인하게 조롱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데 루머를 퍼뜨리는 것은 인류가 구석기시대부터,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그 행위 자체를 근절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절도를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소리이다. 소유권이 있는 한 도둑질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생활이 있는 한 폭로가 있고, 진실이 있는 한 루머가 있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말 그대로 근대에 생겨난 것이고, 그것이 유지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공론장 또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그 각각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주체 및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며 또한 그로 인해 단단해질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생활을 까발리는 저열한 네티즌'이라는 식의 수사를 남발하는 것은 진정한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건, 바로 그런 대중들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대중사회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들이 공론장에 '사적인 것을 개입시키'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터넷질을 하다가 남의 사생활을 깠다고 해서 그게 공론장을 더럽히는 행동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런 행위는 개별적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공론장과는 무관하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토론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론장에는 참여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다.

나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오공감의 떡밥을 물어서 끼어든다면, 이것은 공론장에의 참여가 아니다. 이글루스 사용자들, 혹은 '네티즌'이라 할 수 있는 일부만을 염두에 두고 그 글을 쓴다면 분명히 그렇다. 반면 보편적인 사회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 매체에 기고를 한다면 그것은 공론장에의 참여가 될 수 있다. 구경꾼의 숫자가 아니라, 발화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구경꾼의 속성이 핵심이다.

숫자만 많다고 해서 그 청중들이 공론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숫자가 적어도 공적인 사안을 합당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으면 공론장이 된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인사청문회를 실시간으로 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선덕여왕을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하지만 전자는 공론장에서의 토론이고 후자는 그냥 문화적인 컨텐츠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비슷한 차원에서 나누어볼 수 있다. '신상 까기'는 야만적이기는 해도 공론장의 기능 내지는 속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대중들이 공론장에 사적인 요소를 뒤섞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선후관계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태는 정 반대로, 공론장을 구성하는 체계가 대중들의 '사적 폭로'를 공적인 사안으로 무리하게 격상시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익명의 네티즌들은 누군가의 실명과 인적사항 따위를 폭로하면 '복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 현상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질문을 해보자. 왜 그게 복수가 될까? 가면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이라는 가상무도회에서 쫓겨나 현실 속에 존재하는 피와 살을 가진 개인으로 격하되는 것, 인터넷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 등을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이다. '털린 자'들은 버로우를 타고 네티즌들은 그것으로 응징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박재범의 사례에서도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비슷한 해석이 가능하다. 마이스페이스를 뒤져서 지난 이야기를 찾아내고 폭로하는 것은 디씨에서 누군가의 신상을 털때 하는 짓과 다를 바 없다. 이름이나 전화번호, 학교 등을 통해 일단 싸이 주소부터 알아내고 거기서 사진첩을 샅샅이 뒤지는 게 신상 털기의 일반적인 행태라고 본다면 분명히 그렇다. 문제는 개인들의 이러한 사적인 난장판에, 공공의 것으로 기능해야 할 언론이 클릭수 장사를 하기 위해 빨대를 꽂아넣고 있다는 것이다(그로 인해 이제 인터넷의 개인들은 언론이 바로 그렇게 보도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연예인의 사생활을 추적하기도 한다. 박재범 사건에서도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던 것 같다).

전자와 후자 모두 비판의 대상이지만 전자를 비판할 경우 '내 탓이오, 우리 모두의 탓이오'라고 가슴을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라는 보장 또한 사실 없다. 하지만 후자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네이버 메인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내 매체들의 기사 수준은 정말 한심스러울 지경이다. 한국의 공론장이 엉망인 이유로 네티즌들을 꼽는 것은 손쉬운 답변이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언론이 원래 저질이었고,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저질이 되고 있을 뿐이다.

언론 산업의 구조를 도외시한 채 네티즌만을 비난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본말전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윤리적' 잣대야말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교묘하게 은폐함으로써 공론장을 현재의 수준으로 고착시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의는 지금 할 만한 것이 아니므로 다음 기회를 기약하도록 하자.
by 노정태 | 2009/11/04 23:58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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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1/05 00:19
관련 기사들 몇개를 보면서 '좌파 운운' 할 정도의 인터뷰면 대체 질문을 어떻게 했길래? 라고 의아해하긴 했습니다. 뭐, 지큐 인터뷰 전문을 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건, 바로 그런 대중들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대중사회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는 지적은 적확한 지적이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5 02:48
인터뷰 재미있습니다. 웹에 컨텐츠가 공개되어 있다고 기억합니다. 검색해서 한 번 직접 읽어보세요. 인터뷰이의 방황과 인터뷰어의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죠.
Commented by maxi at 2009/11/05 10:19
http://www.style.co.kr/gq/feature/ft_view.asp?menu_id=04030300&c_idx=011005020000027

정치적인 논쟁은 사실 별로 신경쓰이진 않고 전체적으로 인터뷰 내용이 "찌질함 폭팔"의 내용이라 한번쯤 보고 이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를 재고해볼 필요는 있는거 같더군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5 14:53
maxi/ 그래도 이렇게까지 생각 없이 폭발하는 게, 저는 재미있고 어떤 면에서는 귀엽기도 하더군요. 특히 '자살하고 그랬을 때'라고 윤계상이 말하자 '자살기도 했단 말이냐?'라고 묻고, '아니, 남들이...'라는 식의 문답 오가는 거 정말 짱이지 않습니까. 서른 살의 사춘기, 뭐 이런 거죠.
Commented by ir at 2009/11/05 02:32
글 잘 봤습니다. 읽는 도중, 저는 골목길 컴플렉스가 떠 오르네요. 기자는 선배 기자를, 교수는 학계를, 연주자는 스승을 특히 의식하지 관중이나 일반 시민들에겐 별 관심이 없지요. 이게 또 엘리트주의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여튼, 구경꾼 숫자 < 발화자의 속성, 좋은 분석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5 02:51
사실 학계는 다른 누구보다 서로간의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죠. 물론 대중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실력자도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구경꾼의 숫자도 중요한 요소인데, 구경꾼들이 가진 본래적 속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격려의 말씀 감사히 듣겠습니다.
Commented by 파도소리 at 2009/11/05 12:15
위에 링크된 GQ 인터뷰 보니까 정말 윤계상 발언의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아이돌 출신이라 연기자로 인정 못받는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비관하는 것 같습니다. 좌파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네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5 14:55
본인이 아이돌 출신이어서 몇 가지 이득을 봤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더군요. '통상적'인 루트라면 그 정도 얼굴과 끼로는 영화 주연 맡기 힘든거 다 알면서 말이죠. 본인이 생각하기에 잃은 게 있다면, 남들이 보기에 얻은 게 있을 거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는 게 참 어리구나 싶었습니다.
Commented by brick at 2009/11/05 16:47
명함에 직함을 '네티즌'이라고 파고 다니는 인간은 단 한번도 만난 일이 없는데, 왜 그렇게 인터넷 기사들에는 네티즌이 이랬다 저랬다, 책임 질 수도 없는 그 '네티즌'을 들먹거리는지 원.

예전에 디씨뉴스에 '개만 너무 사랑한 '개똥녀' 화제' (2005년 6월 경)라는 기사를 읽다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스크랩 해놓은게 있어요. 기사의 마무리는 이렇습니다.

이처럼 '개똥녀'라는 별명을 얻은 견주의 얼굴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속속 합성물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개인 신상 정보가 밝혀져 여러 네티즌의 응징을 받게 될 지에도 새로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놓고 응징을 사주하는데, 요새 저질 인터넷 기사도 별반 달라진게 없어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5 20:35
그런 식으로 그 '네티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거죠. 그러면 '네티즌'들은 더 발광하고, 실컷 누군가 깨진 다음에 '이런 인터넷 문화는 곤란합니다'라고 훈계를 하고 지나가는 수법이죠. 공론장을 형성하는 언론이나 언론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후...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간만에 들어가서 사진 봤는데, 녀석 잘 크고 있군요. 조만간에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Commented by brick at 2009/11/06 05:11
그러게요. 조만간에 뵈요.
맛난것도 먹고 가을이 입동이 하로도 만나고,

가을인데 입동이 오기전에....으음 저질개그.
Commented by waric at 2009/11/06 09:25

요새 여러 생각이 들 찰라에 이 글 써 주셔서 감사..
ㄱㅈㅇ기자가 블로그에 윤계상씨 발언을 포스팅한 거 보고
기자와 블러거, 언론인과 네티즌 사이의 간극에 대해 다시 생각이 들더군요.
노정태님도 언론인으로서 기자(지면매체를 통해 기사를 발표하는)의 블로그 포스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기자가 뉴스를 만들고, 그 뉴스를 바탕으로 다시 기사를 쓰고 하는..
(대개 ㅈㅅㅇㅂ가 잘 하는 기사 쓰기 방식이기도 한 듯 한데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7 23:18
기자가 블로그를 하는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틀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겠지요. 블로그가 아니라 그 무엇을 통해서라도, 기자는 자신이 취재할 사건을 직접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보도 윤리 중 제일 중요한 게 바로 그거죠. 자작나무를 태우지 말 것.

그런데 억지로 익명으로 쓰신(그런데 밑에 링크를 걸어두셨으니 그 익명은 의미가 없습니다만)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 활동을 그런 차원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윤계상 사건 관련 포스트를 쭉 읽어봤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Commented by waric at 2009/11/06 09:31
http://poisontongue.sisain.co.kr/1227
ㄱ기자가 잘 쓰는 방식인데
'윤계상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인신공격을 했다.
나는 윤계상이 누리꾼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논쟁의 구도를 다시 짜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변희재와 같은 이들이 걸고 넘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 해당 문구를 보고 갸우뚱해지는데요.
ㄱ기자와 같은 방식의 블로그 운용(運用)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7 23:19
위 리플에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고재열 기자는 본인이 '네티즌'이라는 사실을 너무 의식하고 글을 쓰고 있는데, 인용하신 대목이 기자로서의 윤리에 그렇게 심각하게 위반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zigz at 2009/11/06 15:24
1.
가끔 생각하는 것이~ '공론장' '선' '대중' 등 하는 이념형들이 뭔가 규범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혼동되기 쉬운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먹물/좌파들이 재수없어 보인다는 것도 그와 같은 혼동에 비롯한 결과가 아닐까요?

노정태님의 글에도 하버마스가 인용되어 있습니다만,

(서유럽형)복지국가의 탄생으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상호침식이 일어나 공론장 자체의 붕괴가 야기되었다 -> 매스 미디어는 이미 부르주아 시민사회에 근간하는 형태의 시민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 그러니까 기업/시민연대(?) 등등, 새로이 시민권을 얻은 자들의 공동체를 통하여 세계의 민주적=_= 운영을 꾀합시다.

저는 이렇게 읽었거든요-_-;

이번 글에서 사용된 소위 공론장, 언론, 대중과 지식인/좌파의 도식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공적인 대화의 적합한 소재란 어떤 것일까요? 이오공감의 떡밥과 종이매체의 떡밥의 차이는 그닥 엄청난 것도 아닐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만...음.

여튼 좌파에 대한 적대감은 무척 심각한 문제이고, 윤계상 씨의 발언은 말실수나 오해같은 게 아니라 무척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의 발언이 인터넷을 타고 무슨 언론을 타고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현상을 소위 체제나 언론의 규범성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디고 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품위없는 말거지, 행동거지를 단순히 천박하다고 비웃을 게 아닌 게, 그들은 용산이나 기륭전자의 현장에 없으면서도 좌파보다는 훨씬 덜 아니꼬와보인다는 것ㅎ

2.
참고로, 신문이 인터넷을 인용하는 현상은 인터넷이 공론장??으로서 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 특수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계량적 연구도 꽤 활발히 진행되는 중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7 23:27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에는 당연히 어떤 가치 평가가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론장이 무조건 선하고 그렇지 않은 것이 무조건 악하다는 식의 단순 평가가 아니라도, 아무튼 평가 자체를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공론장이 존재하지 않고, 대신 '여론'이라는 것이 있으며 그것을 체계가 형성하고 있다고 하버마스는 말하죠. 그런데 '인터넷에서 과연 기존의 언론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담론이 형성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하버마스의 개념틀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은 공론장인가?'라는 임시적 질문을 던진 겁니다.

좌파에 대한 적개심 문제와 언론의 규범성 문제는 별개의 것이죠. 저는 그것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전자를 후자로 환원하지도 않았고요. 전자가 일상적으로 퍼져 있고 그래서 윤계상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표현을 썼는데, 그 인터뷰를 본 언론들이 마구잡이로 퍼뜨리고 있다는 거죠. 저는 이 글에서 전자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고, 논의의 편의를 위해 '대중들은 원래 그렇다'는 식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본문을 잘 읽어주셨으면 싶군요.

신문이 인터넷 '여론'을 손쉽게 취하는 현상이 있다 해도, 인터넷이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게 제 글의 취지입니다. 그 표현이 가능하려면 '공론장'이라는 단어를 '그냥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많이 이야기를 하는 시공간'으로 규정해야 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논의의 많은 부분이 엇갈려 이해되고 있는 것 같군요.
Commented by 방연필 at 2009/11/06 17:44
혹시 <런치타임 경제학> 이라는 책 읽어보셨나요?

이 책이 궁금해서 일반 독자들의 평을 살짝 봤는데, 대체적으로 부정적

이네요. 이 책 읽을만 한지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7 23:28
안타깝게도 그 책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훑어보신 후 결정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Commented by 파르마콘 at 2009/11/10 00:04
전 이 일련의 일들이 공각기동대의 전뇌해킹은 코웃음칠만한 사회 현상으로 보이더군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10 21:06
공각기동대라는 작품 내에서 전뇌해킹은 비웃음의 대상이 될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했는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홍수 at 2009/11/10 18:20

법학을 전공하셔서 물어 봅니다. 제가 조금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 할려고 하는데, 대학 재학시에 법학관련 수업을 들어 본적이 없거든요.

행정법 을 처음 공부 하는데, 어떤 교재가 좋은지 궁금하네요. 물론 이런

정보야 허다하게 널렸지만, 노정태씨 의견을 참고하고 싶어 뻘줌함을

무릎쓰고 몇 글자 적어봤어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10 21:08
공무원 시험 준비는 대체로 학원의 커리큘럼에 맞춰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법시험 2차를 준비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더욱 제대로 된 조언을 드리기 어렵겠군요. 좋은 성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Commented by zzz at 2009/11/11 06:00
님 루저사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주시죠 ;_;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11 13:51
입사시험 원서에도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이 버젓이 올라가는 나라에서 놀랄 게 뭐가 있나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방향에서 특별히 제가 덧붙일 내용은 없습니다.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11/12 13:33
노정태님은 진짜 논객인거 같네요.
일전에 진중권님이 논객은 현상이 일어날 때 뛰어들고 지식인은 상황이 종료된 뒤에 발언한다고 했는데.
시안마다 생각해볼만한 글을 써주시니 진정한 논객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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