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지상의 불의, 천상의 정의

[프레시안] 지상의 불의, 천상의 정의


"땅의 구석구석이 폭력의 도가니입니다. 하느님, 일어나소서!" (시편 74장 20절)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지젝은 말했다.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하는 하위 관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을 하위 관료라고 착각하는 신이라고.

자상한 아버지이며 충직한 남편이었던 공무원 아이히만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따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하위 관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신처럼 기계적으로 매일 수천 명의 죽음이 담긴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는 바로 그렇게 이루어졌다.

물론 판사는 신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건의 판결을 처리해야 하는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하는 일은 그저 여느 공무원들의 서류 처리와 다를 바 없는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법원에 들락거릴 일이 없고, 지금 겪고 있는 재판이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검사는 온갖 정보를 틀어쥔 채 고압적인 태도로 피고인을 몰아붙인다.

이정희 의원의 말마따나 변호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판사에게는 신과 같은 책임감이 요구된다. 판사는 일개 공무원처럼 권력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용산 참사에 대한 1심 판결은 엄연한 정치 재판이었다. 김형태 변호사의 말대로, 그것이 순수하게 하나의 형사 재판으로 다루어졌다면 99% 무죄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검찰은 화염병 투척으로 인해 화재가 났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형사 재판은 철저히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이 유죄를 못 밝혔다면 당연히 피고인들은 무죄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헌법적 원리를 무시한 채, 자신들이 판관 포청천이라도 되는 양 '참회의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며 도리어 피고인들을 다그쳤다.

왜 있지도 않은 죄를 뉘우치며 선처를 호소해야 하는가? 헌법에 적시되어 있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형사 재판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법 앞에 정의를 호소하는 행위가 너무도 우스꽝스럽게만 보이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용산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항소하여 결국 이 사건이 대법원까지 올라간다고 해보자.

신을 대신하여,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대변하여 판결을 내릴 13명 중 한 사람의 자리에 신영철이 앉아 있다. 이메일을 통해 일선의 판사들에게 노골적으로 외압을 넣고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사람 말이다. 대법관은 본인이 사퇴하지 않는 한 임기가 다할 때까지 신분을 보장받는다. 그를 끌어내리려면 국회에서 탄핵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다수당인 한나라당, 미디어 법을 '위법'하게 통과시켰지만 '효력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듣고 표정 관리에 들어간 한나라당이 의회의 3분의 2 가량을 점하고 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삼권분립의 취지를 존중하여 법리적 판단을 마친 후 정치권으로 다시 공을 돌린 헌법재판소의 미디어 법 판결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미 현재의 국회는 이성적으로 토론하여 합리적으로 표결하는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상당 부분 상실하였다.

위법한 표결 처리로 만들어진 법안은 무효라고 판시함으로써,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어쨌건 형식적인 합리성이나마 갖출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의 민주주의, 우리의 헌법을 지켜낼 수호자로서의 자각을 내던진 채, 그저 '일개 판사들'처럼 행동하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가 지상의 법에서 그 어떤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들이 아버지를 화염병으로 죽였다고 판결을 내리고, 옳지 않은 과정으로 만들어진 법도 무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진정한 정의는 저 하늘 너머에만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 11월 2일, 시민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야 한다.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정의구현사제단의 위령 미사가 예정되어 있다. 물론 서울시는 '왕궁 수문장 캐릭터' 행사가 있다며 광장 사용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상의 불의가 천상의 정의로 씻길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신발 끈을 단단하게 고쳐 맨다.

/노정태 전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



많은 분들이 나와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저녁 7시 시청광장입니다.

덧글

  • ellouin 2009/11/02 14:09 # 답글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이오공감에 추천드립니다.
  • 노정태 2009/11/02 14:16 #

    감사합니다. 오늘 날이 확 추워져서 걱정이네요.
  • zigz 2009/11/02 15:11 # 답글

    한국나라 바깥에서 살기 때문인가 무엇 때문인가...용산사태나 미디어 법을 같이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온당한 동시에 지나치게 전략적인 전개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_=;

    용산사태는 결국 잊혀질 것이고, 미디어법 사태(?)도 마찬가지이겠죠. 그 두가지를 같이 엮어서 이야기해도 잊혀질 일은 또 잊혀지고 말겠습니다. 수없이 패배한 "사태"들처럼 말이죠.

    세상의 불의를 바라보거나 분개하며, 동시에 그런 세상에 무관심한 채 혹독하게 일할 수 있다면, 모든 의미를 상실한 채, 그래도 살아남을 수는 있다는 겁니다. 최근이랄까, 1950년대를 공부하다보니, "먹고사니즘"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이 사람들을 지배하는지 알 것만도 같구먼요.

    세상은 원래 정의의 실험장이 아니라는 생각조차드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이오공감에 추천~
  • 노정태 2009/11/02 16:12 #

    '온당한'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특히 인터넷의 여론을 보면 미디어법 판결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 같더군요. 하지만 헌재의 판결은 '있을 수 있는' 판결인데 반해, 용산 참사 1심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판결입니다. 헌재 판결만을 놓고 본다면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보다는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지만, 용산 참사 1심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죠.

    물론 사람들은 잊습니다.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남의 일에 신경쓸 틈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감싸안고 사는 자신의 일도 결국 다 잊어버리고 무로 돌아가죠. 그런데 그게 지금 우리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왜 글을 쓰고 왜 집회에 나가려고 하는 걸까요?

    국외에 계시다니 참여해달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겠군요. 이오공감 추천 감사합니다.
  • ㅇㅇ 2009/11/02 18:29 # 삭제 답글

    목수정 사건이랑 팩트골룸 발언으로 진보신당 쌍욕먹게한
    정태님이 전략적 어쩌고 하는거 보니까 웃기네요 ㅋㅋ
  • 지나가다 2009/11/02 22:05 # 삭제

    로그인 좀... 아니면 나처럼 입 닥치고 있던가.
  • 노정태 2009/11/02 23:07 #

    ㅇㅇ/ 쌍욕을 먹어도 할 말은 해야지 않겠어요?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사는 대로만 살 거면 전략적 사고가 무슨 필요가 있나요. 그냥 눈치껏 대세에 맞춰 따라하기만 하면 되지.
  • 0_0 2009/11/03 12:50 # 삭제

    항상 비로긴자 중에서도 악플 많이 다는 사람 보면 꼭 이분이더라...
    'ㅇㅇ'라는 이름으로 댓글 단 사람이 모두 동일인이라고 친다면......

    도대체 뭐하시는 분입니까? -_-?
  • 방연필 2009/11/02 23:10 # 삭제 답글

    아쉽네요. 하루 전에만 올렸으면, 헬스장 따위는 하루 빼먹고

    갔을텐데 말이죠.

    용산참사로 인하여 억울하게 감옥살이 할 위기에 처해진 분들이

    잘 해결됬으면 좋겠습니다.
  • 노정태 2009/11/03 01:41 #

    최선을 다해서 가장 많은 분들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했는데, 그래도 여의치 않았네요. 더 나은 방안이 뭐가 있었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도 이 부당한 판결이 정의의 심판을 받았으면 합니다만, 아직은 현실이 어둡죠.
  • 다복솔군 2009/11/02 23:42 # 답글

    같은 시각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알았다면 나갔을텐데...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만 듭니다.
  • 노정태 2009/11/03 01:42 #

    아시겠지만 오늘 정말 추웠습니다. 전경들이 미사 보는 신부님과 신도들을 둥글게 둘러쌌어요. 바람을 막아주려던 의도 같은데, 그래도 오지게 추웠습니다. 저도 다른 분들께 미안한 마음 뿐이더군요.
  • 2009/11/03 00: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09/11/03 01:44 #

    세상은 넓고 비로그인 찌질이는 많습니다. 그렇지는 않네요. 동일인의 아이피가 꼭 같으라는 법도 없죠. 원래부터 별로 신경 안 쓰기도 하고요. 아무튼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방연필 2009/11/03 07:50 # 삭제 답글

    추운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용산에서 화를 입은 분들이 저 너머의 세상이

    있다면 편안하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봅니다. 쩝
  • 노정태 2009/11/03 17:08 #

    그분들도 그분들이지만 우리도 이대로는 평화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할텐데, 녹록치가 않아요. 다시 생각해도 한숨만 나오네요.
  • fjkd 2009/11/03 11:01 # 삭제 답글

    시청 미사에 갔다 왔습니다. 신부님들이 사람들에게 믿음과 안전한 느낌을 줬어요. 사람들 마음속까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찰들이 벽 역할을 해서 실내 콘서트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웃고 박수치고. 시국선언을 또(4차?) 했는데 명문이라고 하더라구요.
  • 노정태 2009/11/03 17:10 #

    명문이긴 했는데, 시국선언 낭독 도중에 불빛이 모자라서였는지 신부님들이 읽다가 못 읽고 그랬죠. 근데 신자들은 우르르 따라 읽고 있어서 김인국 신부님이 '잠깐만, 스톱!' 하고 외치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이번 시국선언은 사제단이 또 한 사람의 의로운 약자인 김용철 변호사를 지금도 품에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같은 현장에 계셨다니 참 반갑네요.
  • 2009/11/03 17:08 # 삭제 답글

    전 편집장 이런거 사용하지 말고 그냥 노정태라고 하면 안 되나요? 전 국방부 장관 이런 호칭 좋아하는건 수꼴들이나 할 일이지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냥 자기 그대로를 좋아하지 않나요?
  • 노정태 2009/11/03 17:12 #

    세상이 그렇게 직설적인 표현만으로 되는 곳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전' 자가 붙어도 아무튼 직함이 있어야 사람들이 잉여 취급을 안 하죠. 사람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들어주지 않는 세상이니 별 수 있나요. 그리고 저는 이런 저런 호칭 좋아합니다. 한때는 '대중문화 평론계의 큰 별'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대단히 합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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