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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입법부 존중인가?
헌법재판소가 절차상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법률을 무효로 하지 않은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판결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므로 아직은 짐작으로 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헌법기관이므로, 가급적이면 입법부에서 만든 법 자체를 사법부가 무효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결론이 원칙상 도출된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서로의 권한을 존중할 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삼권분립에 대한 표면적인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 사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존중한 게 아니라, 배후에 있는 행정부의 눈치를 본 판결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실을 다시 한 번 말해보자.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은 모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여 강행통과되었다. 삼권분립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분리가 지켜져야 한다.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드는 권한은 입법부가 소유하고, 입법부 자체의 판단과 합리적 토론의 과정을 거쳐 그 법을 통과시킬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입법부를 굳이 분리해야 할 이유도 사실 없다.

청와대가 미디어법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 뜻을 받들어 밀어붙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무효로 판결했어야 한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판에, '입법부 존중'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위법한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법을 유효하다고 선포한 것은 '의도적 무지를 통한 과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헌재와 법원 모두 '사법부는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하나의 환상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문제는 정치권에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본래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기관이다. 헌법을 수호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지, 입법부를 존중한다는 명목 하에 행정부의 전횡을 방치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판결, '꼬우면 다수당이 되어라'는 말과 다를 게 뭔가? 엄연한 헌법기관이 자신의 정치적 책무를 회피할 때, 정의의 실현은 한 발자국 더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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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태 | 2009/10/29 15:42 | 트랙백(1) | 핑백(2) | 덧글(39)
트랙백 주소 : http://basil83.egloos.com/tb/5108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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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apcold님의 블로그님 at 2009/10/29 16:34

제목 : H당 미디어법 판결: 헌재의 필살 얍삽이
!@#… 미디어법 입법의 불법성에 대한 헌재의 판결. 결국 헌재는 과정의 불법성을 인정함으로써 법도 모르는 또라이는 아니랍시고 체면을 차리고, 법안의 유효성은 인정해서 정치적 부담은 피해가겠다는 책임 회피의 정신이 절묘하게 배합된 환상의 구토칵테일을 만들어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라스베가스에 남는다”라는 미국 격언처럼, “국회에서 일어난 일은 국회에서”라는......more

Linked at 카나코의 순수지대 : 헌재, .. at 2009/10/29 22:06

... 밖에도 이오에 갔네요. 이 글의 논리는 헌재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라 황송합니다.사적인 표현 블라인드 처리하고, 이오에 있는 다음 포스팅을 참조 바라겠습니다.http://basil83.egloos.com/5108569 ... more

Linked at 잉여인간 모놀로그 : 헌재에 .. at 2009/10/29 23:06

... 현명한 식견과 정의로운 결단 수준에서 문제를 매듭질 수가 없게 된다.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도 아니면서 끌어와서 좀 미안한 감은 있지만, 예시를 위해 잠시 노정태 씨의 글에서 한 대목을 뽑아보겠다. 청와대가 미디어법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한나라당은 그 뜻을 받들어 밀어붙였을 뿐이다. 그렇다 ... more

Commented by blue ribbon at 2009/10/29 17:15
헌법을 위반한 법률은 사라져야 되는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29 18:40
국회에서 해결이 안 되니까 헌재에 넘긴 건데, 그걸 다시 국회로 보내다니. "병이 있지만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
Commented by 코코볼 at 2009/10/29 17:31
헌재가 상식이 없는듯..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29 18:41
삼권분립 원칙을 표면상으로 지키면서 실질적으로 욕보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Bani at 2009/10/29 18:02
그저 서비스업일뿐이죠 ... =_=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29 18:41
사실 저는 법조계가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사람들의 갈등을 해결해주는 그런 서비스업이지, 정권에 대한 '립서비스'를 하는 그런 업종이어서는 안 되죠. 한숨만 나옵니다.
Commented by 착선 at 2009/10/29 18:54
우리나라는 삼권분립 보단 삼두정치가 어울리는듯..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5
그래도 아시아에서, 세계적으로 드물게 민주화를 이루어낸 나라이기도 합니다.
Commented by 쿠와쿠와 at 2009/10/29 19:41
헌재는 사법부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입니다. 무슨 일 날때마다 헌재 찾아가서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것도 문제지만, 헌재가 지금 같이 구는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일이죠.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6
헌재의 성격이 무엇이냐를 놓고 논의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넓은 의미에서 사법부에 속한다는 것은 대체로 통용되는 사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헌재의 존재 이유에 대한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Commented by 신밧드 at 2009/10/29 20:04
한 발자국이라고 하기엔 걸어야 할 발걸음이 너무 많은 현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6
그래도 절망하지 않는 게 중요하겠죠.
Commented by 아노말로칼리스 at 2009/10/29 20:17
관습법운운~이후 헌재의 최악의 저질 개그였습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7
그 판결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동원되지 않던 법리가 갑작스럽게 등장했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Kurtz at 2009/10/29 20:22
결국 헌재도 법류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논리적인' 곳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거 아닐까요. 법률 무효화시켜봐야 한나라당에서 다시 통과시킬테니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내린걸로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꼭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보지만 헌재를 무언가 '최후의 보루' 라는 이미지는 격하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냥 검찰처럼 정부의 하수인인거 같네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9
문제는 그 정치적인 판단이 '소극적 정치성'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데 있죠. 헌재가 최후의 보루이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실망감을 충분히 표현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헌재에서 무효판결된 법률은 국회에서 다시 입법할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아비달짐 at 2009/10/29 20:30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주셨네요. 근데 이런 문제 관련해서 헌재가
너무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하는것 같아요. 지금도 소스는 다 던져준것
같은데, 입법부와 맞서고 싶지는 않다는 거잖아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09
그런 거죠.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 알아서 싸우라는 것. 그런데 현재 수준에서 한국의 정치권이 과연 '민주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있느냐를 따져본다면 매우 절망적입니다.
Commented by 역시나.. at 2009/10/29 21:00
저당 공천받는 인간들중에 판검사출신들이 많더니.....

앞으로 판사들 선거에 나오나 안나오나 지켜봐야겠군....
Commented by 지나가다 at 2009/10/30 00:10
판검사출신은 헌법재판소와는 직접적 관련은 좀 적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0
역시나../ 대체로 판사들은 검사들보다는 덜 정치권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나가다/ 어차피 헌재 재판관들도 다 사시 출신입니다. 처음부터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한 판검사출신들이 헌재 재판관이 되는 게 맞죠.
Commented by 조롱이 at 2009/10/29 21:53
사법부의 말도안되는 변명.
당연한 내용이지만
저 처럼 설명을 듣지않고는 인지를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것같네요
깔끔한정리 잘보고갑니다.

그리고 세번째 단락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실을 다시 한 번 말해보자.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은 모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여 강행통과되었다."
여기서 누구나 다알고있는 진실을 부정하는 딴나라족이 등장할것같은 예감이드네요. 저런걸 설명해달라고하면 정말 난감하던데,
노정태님께서는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이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지않았다고 주장하는 딴나라족이 나온다면 어떻게 대처하실지.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1
다행히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Commented by 한단인 at 2009/10/29 22:46
쫌 말이나 말 같았으면 저렇게 욕을 처먹진 않았을텐데요...

명색이 사법고시 패스해서 대법관까지 이른 사람들이 뭔 말주변이 그리들 없는지..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2
판사들은 하루 종일 서류를 읽고 판결문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타고난 재능이 없는 한 대체로 말을 잘 못합니다. 문제는 어투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이 경우에는 특히.
Commented by 려우 at 2009/10/30 01:05
헌재와 법원 모두 '사법부는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하나의 환상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위 말 캐공감합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입법부는 정치(실세)로부터 자유롭다"는 환상을 지니고 계신게 아닌지...

님말씀에 딴지 걸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구요.(이번 결정 저또한 빡 돕니다)

애초에 분립이라는 게 가능할려면 분립이라는 힘이 존재해야할텐데... 그 힘이라면 물론 국민의 적극적 관심(투표권행사 등등)일테구요... 그런데 삼권이 충분히 분립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결국 그 책임은 국민에게 물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 말은.., 20kg 역기 밖에 못드는 사람한테 60kg 역기를 건네주며 견디라고 해본들... 애초부터 예견된 결과라면 사법부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있을까라는...

잘 모르겠습니다ㅜㅜ
Commented by 려우 at 2009/10/30 01:10
아마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국민이 힘을 실어준적이 없는 사법부를 비판해본들 무슨 가치있는 발언이 될까라는...

p.s 이미 저는 루저의 길에 깊게 깊게.. 발을 들인 듯 하네요ㅜㅜ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3
질문하신 주제의식에 대답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정도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려우 at 2009/10/30 18:03
달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래도 얼른 님의 통찰력을 보고싶네요. 호호
Commented by 꿈틀촉촉오징어 at 2009/10/30 02:50
3권중에 2권을 '정책실행의 수월성'을 위해 애초에 한통속이 되라고 세트로 묶어줘버렸기 때문에 국회와 청와대는 원하는 바대로 잘 처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나머지 1권(헌재&사법부)는 직접 뽑지도 못하니, 뭐 3권전체를 파란깃발로 펄럭이게 만들어준건 MB도 아니고, 들것에 실려 투표하러 가는 빠심과 그에 대항하지 못하는 무관심들입니다..

그게 국민의 뜻인데, 헌재가 무슨수로 국민의 대의를 무시하나요.ㄲㄲ


적어도 간접적으로 뽑힌 헌재는 권력의 주체인 국민들이 묶어준 2권의 결속을 끊을 정당성이 없습니다.

이번 판결처럼 국민들이 직접 뽑아준 국회에서 해결하던가,

국회에서 자정작용이 안되면 좀비가 되든 제2의 6.29를 하던 국회와 청와대 말고, 여당의 당론을 여론으로 굴복시키는 방법 이 두가지를 헌재는 제시해준겁니다.

뭐 딴나라당 하는걸로 봐선 앞에선 '국민들께 죄송ㅋ,당론 수정하게뜸'하면서 뒤에서는 '국회의원은 자유위임임, 우리는 당론같은거 신경안씀'하면서 뒤통수 치고있을 확률이 높겠습니다만 ㄲㄲ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4
마찬가지로, 말씀하신 내용의 기저에 깔려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내용은 별도의 글을 통해 말씀드리죠.
Commented by blus at 2009/10/30 05:59
판결문 전문은 헌법재판소 홈페이지(http://www.ccourt.go.kr/)에 방문하셔서 [소식]란 중 [최근주요결정]에서 [사건번호 2009헌라8, 국회의원과 국회의장 등 간의 권한쟁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4
감사합니다. 직접 판결문을 찾아본지 오래 되어서 너무 간단한 것인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판결문을 읽어보도록 할게요.
Commented at 2009/10/30 16: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0/30 17:16
재정난으로 인해 발행이 중지되었습니다. 정기구독자분들께 개별적인 연락이 취해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누락된 것 같군요.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이미 저는 발행처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정기구독료 환불 등의 문제는 02-3447-0143으로 문의해주세요.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Commented by at 2009/10/31 00:03
권한쟁의심판에서 절차가 문제되었다고 입법의 효력을 무시한 판결은 아직 없지 않았나요? 그리고 저도 헌재의 태도는 수긍이 갑니다. 민주적 정당성 없는 헌재가 실질적 정당성은 어쨌든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입법부를 함부로 무시하기는 헌법상으로도 어렵겠죠. 미국이나 독일처럼 국민이 헌법재판관을 선거로 선출하는게 아닌 이상에는요.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2 00:19
판례가 있다 없다만을 따지면 사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말 그대로 '서비스업'에 지나지 않게 되겠죠. 중요한 것은 새로운 판례를 만들 수 있는 타이밍이 언제인가, 과연 지금이 그 타이밍으로서 적절한가 아닐까요? 저는 민주주의가 단지 다수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그런 체제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갑그젊 at 2009/10/31 14:28
그냥 참..뭐...그...참...마...후...참...거...참....후............... 어제부터 그냥 한숨만 나와요ㅠㅠ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11/02 00:20
저도 약간 우울증 비슷한 증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용산 참사 판결만 해도 충분했는데, 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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