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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불거진 아동 성폭행 사건을 지켜본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좋은 법치주의'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법치주의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함성을 통해 구현되는 것은 '강한 법치주의'이며, 그것은 '좋은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사법부는 놀라우리만치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다. 특히 그 성범죄가 친족이나 근린간에 벌어지는 경우, 장애인을 상대로 벌어지는 경우 등에 대해 턱없이 낮은 형량을 선고하는 일이 적지 않다. 정확한 사건명이 기억나지 않지만 유명한 사례. 의붓아버지가 십년 넘도록 양녀를 강간해왔다. 그 양녀의 남자친구가 그 사실을 알고, * 스즈카님의 지적을 받아들여 이 부분을 정정합니다. 법대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그 남자가 존속살해의 공범이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배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살인사건이 벌어지게 된 본질적인 배경이다. 한국의 사법부는 성폭력의 문제에 대해 거의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수준이다. 특히 '가정'이라는 달콤한 어휘가 주입되면, 판사들의 판단력은 마비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과연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낮아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1994년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등에 관한 법률의 형량을 하나씩 짚어보자. 주거침입, 야간주거침임절도, 특수절도, 야간주거침입절도와 특수절도의 미수범이 강간 혹은 준강간, 준강제추행을 저지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흉기를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강간을 저질렀을 때의 형량도 동일하다. 이것은 사형만 없다 뿐이지 살인죄의 형량과 동일하다. 형법 250조에 따르면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해당되는 처벌조항의 형량은 어떻게 될까? 검사는 성특법을 따르지 않고 곧장 형법 301조의 강간치상을 적용했다. 그에 따르면 강간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다. 법전에 보면 1995년 12월 29일 이 조항이 개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왜일까? 성폭력특별법으로 인해 형량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형법에 규정되어 있던 강간치상죄와 성특법의 강간치상죄의 형량이 달랐다.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법적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을 통해 이 형량을 높인것이다. 강간살인이나 치사의 경우, 고의로 사람을 살해할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강간 과정에서 혹은 강간 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사형 혹은 무기징역'은 오직 사형만이 처벌로 규정되어 있는 여적죄(형법 93조)다음으로 높은 형량이다. 적국을 위하여 모병한 자에게 주어지는 처벌의 양과 같다. 이 사건을 두고 더 강한 특별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부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범죄와 관련하여 한국의 형법은 더 이상 형량을 높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보다 더 강한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형법의 전체 체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2.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형법 10조 2항의 심신장애로 인한 필요감경 규정을 문제삼는다. 술을 먹고 범죄를 저지른 놈이 잘못한 건데 왜 감경해주냐는 것이다. 술을 먹고 범죄를 저질렀다면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눈에 띈다. 그것은 이 규정이 존재하는 이유를 무시하는 것이다. 근대 형법이 이루어낸 커다란 발전 중 하나가 바로 책임주의의 발견이다. 설령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너무 지능이 낮아서 자신이 던진 돌에 사람이 맞아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그런 경우에 대해 형법은 처벌을 금지하고 있다. 심신장애로 인한 필요감경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하필이면 그 이유가 '술'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너도 마시고 나도 마시는 술인데 왜 감경 사유가 되냐는 식의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술 자체가 아니라, 술로 인해 심신장애가 발생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술을 마셨다고 하더라도 정신이 멀쩡하다면 온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술로 인해 심신장애 상태에 빠져있었다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므로 판사가 대체 왜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규정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가령 누군가가 술에 취해 정상적인 변별력을 상실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씨발, 이거 나라 꼴이 뭐야? 북한이 훨씬 낫겠다. 이명박에 비하면 김정일이 위인이지, 만세다, 만세!'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녔다고 해보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경찰이 그 광경을 보더니 마침 실적이 모자라던 차였는데, 옳타쿠나 무릎을 탁 치면서 그를 체포했다. 적용된 법 조항은 다음과 같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죄]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추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 술에 취한 사람이 과연 그 상황에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자체가 문제가 되겠지만, 통상적으로 북한을 찬양하는 것은 적어도 처벌받을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긴 하므로, 이 요건을 검사가 어찌어찌 우겨서 통과시켰다고 해보자. 불쌍한 피의자는 술김에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졸지에 7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생겼다. 이 경우 그가 택할 수 있는 방어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심신장애로 인한 필요감경이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신장애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이다. 현행대로 형법 10조 2항이 존재한다면 형량은 3년 이하로 뚝 떨어진다. 반면 그것을 필요감경이 아닌 임의감경으로 바꾼다면, 판사의 재량에 따라 이 사람은 몇 년의 옥살이를 더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법논리를 따져보아도 심신장애로 인한 형의 감경은 필요감경일 수밖에 없다. '심신장애에 빠져 있다'는 말은 곧 '온전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설령 그것이 범죄라 하더라도, 전부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설령 그것이 어떤 흉악한 범죄가 되더라도 말이다. 3. 그간 많은 성폭력 관련 재판의 경우, 법원의 판결이 가해자에게 불필요하게 온정적이었던 경우를 짚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건 한국의 형법이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인식 수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조항을 살펴보자. 제7조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등) ①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7.8.22) * 스즈카님, ??님의 지적을 받아 이 부분을 정정합니다. 성특법의 친족과 장애인 규정은 최소 형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가중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성특법에 맞추어 형법의 성범죄 관련 형량이 늘어나 있긴 하나, 애초에 이 조항의 취지는 가중처벌에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조문을 잘못 파악했습니다. ** 가령 부부강간의 경우를 살펴보자. 부부강간을 인정한 첫 사례는 2009년 1월에 있었는데, 흉기로 생리중인 부인을 위협하여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는 1심 판결 확정 후 자살했다. 만약 이 사건이 항소를 거쳐 대법원에 이르렀다면 과연 1970년에 만들어진 판례가 뒤집힐 수 있었을까? 당시 대법원은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했다가 고소를 취하한 후 폭행 및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 강간을 당했을지라도,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는 강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애초부터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사법부의 시선 자체가 '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큰 문제이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이다. 서로 합의하에 싸대기를 때리며 섹스를 하는 사이좋은 커플 같은 경우와 전혀 무관하다는 말이다. 설령 산신령과 삼신할매가 100년을 사귀고 결혼하여 1000년을 함께 살고 있었다 한들 성을 요구하면서 폭력을 휘두른다면 그것은 이미 폭력의 문제이지 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판사들은 부부강간이나 교재하는 커플 사이의 성폭행 및 강간 따위는 애초에 범죄로 인식하지 않거나 살다보면 일어날 수도 있는 미비한 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문제는 이러한 법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 사건에 무리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강한 처벌이 담긴 특별법의 제정을 요구하거나, 유기징역의 상한 한도를 없애는 식으로 헌법 총칙을 개정하거나, 형법의 책임주의를 포기하는 것 등은 모두 '좋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강한 법치주의'만을 불러올 뿐이다. (성폭력에 대해 친족 여부를 감경 요소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가 없지 않지만, 나는 그러한 입법례가 전체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4.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대체 왜 이 사건에서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이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대로 그것을 적용한 판사가 '사이코패스' 강간범보다 더 나쁜 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가 '회장님'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형사 피의자에게 최대한 많은 형량을 때려넣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알고 사는 판사와 검사들이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도 나의 상식으로는 그리 크지 않다.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으면서도 왜 판사는 검사가 짜맞춘대로 12년형을 확정지었을까? 판사와 검사라는 두 직업군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심 판사는 자신이 내린 판결이 상급심에서 번복되는 일을 반드시 피하고자 한다. 검사 또한 범인을 무죄로 풀어주거나 비슷한 사건의 형량보다 낮은 판결을 받아낼 경우 인사고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판사와 검사 모두 기존의 비슷한 사례의 형량을 따라 맞춰야 할 강력한 유인 동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전제한 채로 이 사건의 양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많은 이들이 범인에게 내려진 징역 12년이 너무 적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이렇다. 보통법(Common law) 국가들의 아동성범죄에 대한 양형과 비교하면 12년은 턱없이 작아보인다는 것. 그런데 이것은 비교의 대상을 잘못 찾은 것이다. 한국은 대륙법 계열 국가이기 때문에 비슷한 법 체계를 가진 나라들과 비교해야 마땅하다. 그 기준에서 놓고 본다면 징역 12년은 그리 낮은 형량이 아니다. 한국 형법 중 성특법의 미성년자 강간 및 강제추행에 대한 규정을 살펴보자. 제8조의2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등) ① 13세 미만의 여자에 대하여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한편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참조하는 독일의 형법에는 아동에 대한 성범죄를 다음과 같이 처벌하고 있다.
독일 형법에서 미성년자 강간치사의 경우 무기징역 혹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강간치상은 5년 이상 10년 이하, 미성년자와의 삽입을 수반하는 성행위 혹은 그에 준하는 학대는 1년 이상 10년 이하, 그러나 그 죄질이 경미할 경우 5년 이하 또는 벌금형에 처해야 한다고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최근 폴란드가 형법 개정을 통해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최고형을 15년 이하로 규정했다고 한다. 동시에 화학적 거세가 처벌의 일부로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해보자. 중요한 것은 한국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결코 낮지 않다는 데 있다. 적절한 대상과 적절하게 비교해본다면 분명 그렇다. 문제는 '처벌할 수 있는 형량'보다 낮은 처벌이 가해졌다는 데 있다. 적지 않은 이들은 바로 그 점을 문제삼아 처벌 가능한 전체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이상 형량을 높이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그게 억지로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이 벌어져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검찰과 법원이 '딱 그 정도'의 형량을 내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면, 바로 그 관행을 개선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이다. 그것은 법을 개정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도리어 이 사건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오직 새로운 특별법의 재정과 형법총칙의 개정에만 맞춰진다면, 정작 문제시되어야 할 사법부의 성폭력 문제 인식을 지적하지는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무리 형량을 높여봐야 무슨 소용인가. 적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계속 그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면. 5. 이 글의 취지는 무리한 법 개정을 반대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더 강화된 처벌 조항을 넣을 수도 없고, 형법 체계의 원칙을 어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정작 그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이목이 쏠려 있는 사이, '가족'과 '친족'의 성폭력에 유달리 관대한 한국의 사법부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대신 더 큰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일에만 매진하게 되지 않을까? 특히 검찰과 개개인의 국민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국민'이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검찰은 그를 마음먹은대로 농락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붙일 수 있다. 가지고 있는 정보력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날 뿐 아니라,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몰아붙이고 불리한 조건으로 내모는 등의 기술에 숙달한 '집단'이기 때문이다('in dubio pro reo'원칙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형사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그래서, 검찰과 경찰에게 더 큰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더 '제대로' 활동하지 않을 수 없도록 시민사회가 꾸준히 감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그들의 행정 작용에 반영시켜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개별자'로서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여성(때로는 남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 수준을 높이는 것, 등등의 일들은 모두 조직화된 집단과 잘 숙련된 활동가, 정치권에 영향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로비스트 등을 필요로 한다. 결국 그런 문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집단은, 역시 네티즌들이 걸핏하면 증오해대는 여성단체들이다. 이 사건을 '나영이 사건'이라고 부르며 '어찌 저 어린 것을! 저 개새끼를 찢어죽이자!'라고 외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드높다 해도, 그들이 과연 본질적인 측면에서부터 여성 문제, 혹은 성폭력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요구하는 피해자 구제책을 마련하고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업무가 어떤 여성단체의 소관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당신은 여성단체들의 권한이 확대되는 것에 기꺼이 찬성하는가? 여성에 대한 증오, 여성단체에 대한 증오, '인권'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에 대한 혐오, 특히 소수자의 권리 주장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반발이 횡횡하는 한국 사회에서,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에서) 잠재적 가해자들의 자기 결백을 위한 함성 너머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 범인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은 '나는 저 개새끼가 아니다'라는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저 개새끼는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니까, 최대한 잔인하게 몰아붙이고 죽여야 마땅하다는 집단주의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선량한 사람들'이 때로는 소스라치게 무섭게 느껴진다. 나치가 오직 유태인만을 강제수용소에 넣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왜 '선량한 독일 국민들'이 강제수용소와 홀로코스트에 찬성했는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치가 그 수용소에 '성범죄자, 강력범죄자, 게이, 유태인, 집시'등을 싹 몰아넣겠다고 사람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당신들을 겁나게 하는 무서운 놈들, 당신들이 싫어하는 잡놈들과 함께 깨끗하게 청소해 드립니다. 맡겨만 주세요. 강력범죄와 성범죄에 대한 증오 그 자체는 정의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조건적인 배제와 차별, 법을 통한 폭력에 대한 찬성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만약 이 사건의 범인이 이주노동자였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그 분노'를 온갖 형태의 '딱지 붙이기'의 제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풀어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예상할 수 있다. 마치 나치가 유태인들에게 노란 별 무늬를 붙이도록 했듯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갈색 천을 달고 다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개새끼가 '순수 혈통 한국인'인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강력한 법치를 요구하지 말라. 국가는 바로 그 강력한 법으로 당신들의 목을 칠 것이다. 시민사회는 오직 '올바른' 법치주의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이 사건과 관련된 논점에 대해서라면, 지금 존재하는 법 수준에서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성폭력과 아동성폭력에 대한 사회 및 법원의 인식 부재가 문제지, 처벌하기 위한 법의 부제가 문제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강력한 법치주의가 아닌 올바른 법치주의, 우리는 그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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