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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행해지고 있는 해악 중, 이토록 공개적이고 또 노골적인 것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누가 봐도 목적이 확실할 뿐 아니라, ‘좌파’라는 식의 색깔론이 횡횡하고 있고, 이른바 ‘개혁 진영’에서 사랑하는 한 문인에 대한 공격도 도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여론은 한예종 사태에 대해 그리 크게 술렁이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서 벌어지는 온갖 사태에 대해 면역이 생겼다는 식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이름 바꾸어 시행되고 있는 대운하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한예종에 대한 불만의 성토는 찻잔 속의 태풍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악이 소리를 지를 때 침묵하는 것은 그 악에 동의하는 것이다. 나는 이 침묵의 정체가 궁금하다. 사실 알고 있지만, ‘궁금하다’고 말함으로써 무지의 갑옷을 조금이나마 늦게 벗고 싶다. 한예종에 대한 공격은 ‘이론학과’와 ‘실기학과’를 구분하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예술 교육 받으러 온 학생들이 통섭이니 뭐니 하는 그런 이론 나부랭이는 왜 배우는 거냐, 그게 다 좌파 이론 가르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구분법이야말로 대중들의 은밀한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한예종을 고립으로 몰아가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내용이 뭐가 됐건, ‘이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일단 싫어하고 보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이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디 워>나 <놈놈놈>을 놓고 벌어졌던 가짜 논쟁 구도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상업 영화’와,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평론가’라는 거짓 구도를 상정한 후, 그 ‘평론가’를 공격하는 일에서 만족을 느꼈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하면 ‘우리를 계몽하려 드는 건가요?’라고 눈을 홉뜨고 따지기 시작한다.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다보니, ‘이론학과’를 적으로 지목하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컨대 우리는 ‘빨갱이다!’라는 딱지붙이기보다 ‘먹물이다!’라는 딱지붙이기가 더 잔인하게 작동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자들은 영악하게도 두 가지의 수사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이미 ‘예술학교에서 이론 배운다더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니, 이론과 실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식의 변명은 (적어도 인터넷 대중들에게는) 쉽사리 통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론에 대한 증오는 비단 한예종에게만 해당되는 사태가 아니다. 한예종을 공격하는 자들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자신들이 ‘상식적’인 세력을 점하고 있다고 믿는 자들 또한 그 증오를 공유하게 마련이다. 진보진영을 쏘아붙일 때 그들이 사용하는 수사법 중 하나가 바로 그것 아닌가? ‘너희들은 이론에만 함몰되어 있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엘리트 좌파들이고...’ 그나마 한예종 사태가 한 줌의 관심을 얻고 있는 이유는, ‘반 MB’라는 전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디 워>사태때 영화평론가들을 비난했던 자들이 한예종에 앞장서서 돌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사람들은 이론을 혐오하고, 예술을 증오한다. ‘우리가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냐를 먼저 따진다. 돈 많은 집안 딸내미가 그런 소리 하고 있다는 비아냥을 던지기 위해서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돈 없는 것들이 왜 예술 한다고 설치냐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이론에 대한 멸시, 예술에 대한 증오. 이 코드만큼은 이명박과 이명박을 비판하는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돈 되는 것만이 좋은 것이다’라는 천박한 배금주의가 그 이면에 깔려 있다. 그림이나 그려야 마땅할 한예종 학생들이 철학은 대체 왜 배우며, 우리 모두가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이 시점에 그깟 예술한다는 애새끼들 몇 명이 울고 짠다고 신경쓸 거 있나? 물론 덕분에 이명박 깔 ‘소스’가 늘어났으니 그건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난 예술한다는 애들 싫어. 이런 식이라면 이명박을 욕할 필요도 없다. 욕하는 놈이나 욕먹는 ‘분’이나 둘 다 이른바 ‘CEO 마인드’로 똘똘 뭉쳐있긴 마찬가지 아닌가? 3년 반 남은 이명박 시대, 목표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도 물론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존엄해지는 것이다. 돈 되는 것에만 관심 갖는 사람들이 모인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이명박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집권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다수라면, 당연히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여당이 승리하는 일은 야당이 승리하는 일보다 더 쉽게 마련이니까.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희망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6월 10일, 시청 앞에서 한예종 학생들의 집단을 보았다. 황지우 총장의 싯구가 새겨진 스티커를 붙이고, 미적으로 단연 돋보이는 깃발을 든 그들. ‘Art is our Power’라는 구호 아래 뭉쳐있는 젊은 예술가들. 어쩌면 한예종 사태가 성공리에 마무리된다 해도, 예술가를 증오하고 이론을 혐오하는 이 나라는 그들에게 결코 녹록한 곳이 아닐 터이다. 하지만 나는 한예종 학생들을 응원한다. 더 많은 분들이 멸시와 증오의 감정을 벗어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할 때, 대한민국은 좀 더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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