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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타고난 지능을 통해 낮은 학력을 극복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역시 예외적인 용기와 정의감으로, 주어진 길을 버리고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그 인권 변호사는 훗날 국회의원이 되고, 4차례의 낙선을 거친 후,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모든 면에서 예외적이었다. 명실공히 사회 엘리트에 속하게 되었으면서도 서민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고, 또 서민 출신에 상고 졸업의 학력을 가지고서도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는 그 예외적인 남자의 이름을 노무현이라고 기억한다. 진정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 예외적인 남자 노무현마저도,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이겨내지 못한 채 결국 몸을 던져 스스로의 생을 끝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평생에 걸친 그의 화두는 결국 ‘정치개혁’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그는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 철옹성같던 보스 정치에 돌 하나를 던졌다.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하면서 그는 영남과 호남으로 대립해있는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꾸기 위해 온 몸을 불살랐다. 재벌 기업에서 ‘차떼기’로 정치자금을 받은 상대방 후보에 맞서 ‘희망돼지’라는 희대의 아이템을 내놓았다. 시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노란 돼지저금통 안에 동전을, 희망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만약 노무현의 정치개혁이 진정 성공을 거두었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무현의 정치개혁, 국민이 뽑은 후보가 국민이 낸 후원금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그 정치개혁은, 절반의 개혁에 불과했다. 어쩌면 절반도 못 되었을지도 모른다. ‘민주당에서 받은 대선 자금은 한나라당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그의 변명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접은 다음이었지만, 그때까지 그를 믿고 있던 많은 시민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으리라. 노무현도 재벌 돈 받았다. 그래서 선거 자금으로 썼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노무현도 이회창처럼 재벌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노무현은 빠른 속도로 시장 앞에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반칙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예외적 인간’은, 어느새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항복 선언문을 낭독해버렸다. 국민이 모아 준 희망돼지가 아니라 재벌의 돈을 받고 선거를 했다고 고백한 그 남자는, 국민이 모아 준 권력이 시장의 손에 넘어갔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나중에 저 세상에서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리라. 노무현 님, 우리가 우리의 권력을 시장에 넘겨주라고 당신을 뽑은 게 아니었잖아요.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온 국민의 희망을 떠안고 대통령 자리에 오른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요. 노무현의 꿈은 실패했다. 정치개혁은 이미 흐지부지된지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제도적인 개혁이나 인사 개편을 단행하는 대신, 검찰을 비롯한 온갖 권력 단체의 목줄을 그냥 놓아버렸다. 경찰이 현재 서울 시내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이 온갖 강경 진압은, 노무현 정권 당시 목줄이 풀린 채 지방에서 농민과 노동자를 물어뜯으며 갈고 닦은 것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지금 경찰이 미쳐있는 이유는 주인이 훈련시키지 않은 채, 이빨을 뽑지도 않은 채 풀어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아기를 물어죽인 도사견이 이제 어른도 물어죽이고 있다. 제도개혁 없는 정치개혁, 권력의 효과적 배분과 통제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정치개혁은, 도리어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치개혁은 결국 정당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노무현의 개혁이 좌초하게 된 결정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선거자금 문제였다. ‘국민의 돈으로 선거를 치른 대통령’이라는 이상이 허물어지면서, 지지자들은 방황하기 시작했고, 노무현을 지켜줘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노회찬은 현재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과 권력자들의 속내는 뻔하다. 그에게 실형을 선고하여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삼성을 건드리면 다친다’라는 본보기를 보이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회찬은 대체 무슨 깡으로 삼성을 건드릴 수 있었을까? ‘이미 권력은 시장에게로 넘어갔다’고 노무현은 말했는데, 그럼 일개 국회의원 노회찬이 대통령 노무현보다 세단 말인가? 여기서도 문제의 핵심은 정치자금에 있다. 노무현은 삼성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특히 그는 ‘개혁’이라는 하나의 꿈을 대변하는 입장이었기에, 삼성에서 미친 척하고 노무현의 선거 자금을 폭로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노회찬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당시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고, 지금의 진보신당처럼 당시의 민주노동당 역시 100%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운영되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삼성과 맞설 수 있었다. 삼성으로부터 받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진보라는 너희들, 노무현이 대통령 할 때에는 그렇게 씹더니, 왜 이제 와서 친한 척 하고 지랄이야? 나는 대답하겠다. 진보라는 우리가 노무현을 씹은 이유는, 그가 꾸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너희들에게는 ‘집권’이 역사의 목표였겠지만, 그래서 노무현이 당선되고 나니 세상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여겨졌겠지만, 우리는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전까지 멈출 수가 없다고. 권력이 시장에게 넘어갔다고 선언해버린 노무현, 농민운동을 하겠다면서 농민들의 죽음 앞에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FTA를 추진하던 대통령 노무현은, 파업 노동자들을 무료로 변호해주던 그 고마운 인권 변호사 ‘노변’의 꿈을 배신한 게 아니냐고. 그렇다. 오히려 진보진영이야말로 ‘노변’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 차별 없고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생활고와 싸우고 경찰과 싸우고 불합리한 행정과 싸우고 흔들리고 약해지는 우리 스스로와 싸운다. 강금실이 법무부장관으로 일하던 당시 법무부에서는 이주노동자 체포를 위해 그물총을 도입한다고 했다가 반발 끝에 결국 철회한 일이 있었다. ‘노빠’들은 그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정작 ‘노변’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진보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는 정말이지 묻고 싶다. 그게 당신들이 말하던 ‘차별 없는 세상’인가? 진정 노변의 꿈을 함께 꾸던 사람들이라면, 그 천박한 행태에 어찌 동참할 수가 있단 말인가? 당신들은 노무현을 좋아해서 대통령이 되게 한 게 아니라, 노무현이 대통령 되었기 때문에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정치개혁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앞서도 말했지만 정치개혁의 핵심은 결국 정당정치의 귀환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당, 자신의 정당의 당원들 외의 그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아야 소신 있는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 희망돼지 한 마리 두 마리로 되는 일이 아니다. 매달 통장에서 자동이채로 2만원 3만원씩 빠져나가는 당원들 수십만명이 있어야 노무현이 이건희를 불러놓고 ‘삼성, 마 해체하소’라고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 묻고 싶다. 우리가 노무현에게 기대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노변’의 꿈은 어디로 갔는가? ‘진보’가 아니라 ‘개혁’내에서도 사실 정당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이름도 찬란한 ‘개혁국민정당’, 줄여서 ‘개혁당’이 바로 그것이었다. 유시민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한 외곽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구상을 하고는, 그것을 숨긴 채 사람들에게 ‘독일식 정당, 100년 갈 정당을 만들자’며 설레발을 치고 다녔다. 이후 벌어진 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이었지만, ‘정당정치’라는 큰 꿈에 홀린 사람들에게는 그게 보이지 않았나보다. 총력을 기울여 재보선에서 유시민을 당선시켰고, 한나라당에서 입당한 김원웅을 모종의 비선조직을 통해 당 대표에 앉혔고, 대선 국면 내내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없이 노무현을 지원하는 일에만 매진했다. 민주당 내에서 노무현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자, 친노세력은 독자정당화를 꿈꾸었고, 개혁당도 그 재료로 삼기를 원했다. 당원들은 개혁당이 남아있기를, 혹은 그 친노세력들이 전부 개혁당에 입당하거나 열린우리당과 개혁당이 1대 1로 통합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유시민과 그의 친위 세력들은 독단적으로 당 해체를 통보했고, 자발적으로 성금을 걷어 사무실을 꾸려나가고 당 살림을 챙기던 열성당원들은 허공에 붕 떠버리고 말았다. 묵직한 마이너스 통장만이 그들에게도 ‘희망’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유시민의 속셈이 드러났을 때, ‘허이구, 이 순진한 사람들아, 이거 원래 노무현 밀어주려고 만든 당이잖아, 몰랐어?’라며 쿨한 척 정치적으로 영리한 척 행세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정당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만 노무현을 당선시키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반면 많은 이들은 진한 환멸감을 느꼈고, 100년 갈 정당이라며 만들어놓은 그 당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공중분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내가 기억하는 유시민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지식 소매상’, 그는 본질적으로 돌팔이 약장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노무현은 죽었다. 이미 정몽준과의 단일화부터가 ‘원칙’을 넘어서는 정치 도박이었다. 노무현의 꿈은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점점 쪼그라들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사정을 잘 아는 대통령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파업 현장에 들이닥친 경찰 특공대의 군화발 아래에 처참히 짓밟혔다.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은 애초에 나올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꿈을 믿었고, 정말이지 믿고 싶어했다. 그 과정에서 정당정치의 이상을 꿈꾸던 사람들이 한 개혁 사기꾼에게 농락당하고 눈물을 흘릴 때, 어쩌면 진작 눈치를 챘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면서도, 상위 1%만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재벌들에게 손을 벌리고야 만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겠지. ‘정치는 현실이야.’ 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모두 다 빠져나간 텅 빈 선거 사무실에서, 후보 노무현은 조용히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거다. ‘정치는 현실이지만, 그 정치를 바꾸는 것은 모두의 꿈과 희망이야.’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야, 그의 이상이 온전히 보인다. 동시에 그의 이상에 기생하고 있던 ‘이상주의자’들의 추악한 모습도, 이제야 온전히 보인다. 하지만 우리, 꿈을 잃지 말자. 정치개혁, 정당정치의 그 꿈을.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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