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예의, 신에 대한 예의

"명동성당의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노정태)
"내쫓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자그니님)


내가 지난번 포스트에 쓴 "어디 경찰 따위가 감히 천주교회의 일원에게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놓고 불필요한 리플 논쟁이 벌어졌던 것 같다. 그 말의 맥락을 좀 더 설명하면서, 지금까지는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지 않았는데, 자그니님의 "내쫓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 2009년 2월 13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문제시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신에 대한, 종교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사회를 전제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약자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강자에게 도움이 될까?

군사독재시절을 겪으며 가톨릭 교회가 진보진영의 방패가 되어줄 수 있었던 것은, 군부가 가톨릭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전 세계에 지부가 뻗쳐 있는 가톨릭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 때문일 수도 있고, 종교 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다는 최소한의 양심 때문일 수도 있고, 교회를 건드릴 경우 발생하게 될 저항의 크기에 대한 공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한 가지 본질적인 사항을 전제로 한다. 한국과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품고 있는 강렬한 신앙심이다.

경찰이 신부를 때리건 말건, 경찰이 성당을 수색하건 말건, 나는 그냥 성당에 와서 성체 받아먹고 갔으니 이번 한 주도 무사히 예수님 땡큐, 신자들의 분위기가 이런 식이었다면 경찰은 명동성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를 때리건 말건, 안방 장농을 뒤지건 말건, 나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오늘도 무사히, 대통령 각하 땡큐, 이런 사람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1000만의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성당을 내 집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은 명동성당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고, 그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디 경찰 따위가 감히 천주교회의 일원에게 신원 확인을 하고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글을 읽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주교회의 일원'인 나의 우월함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가야 하는 목적의 우월함이다.

촛불시위가 한창 벌어지고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경찰이 원천봉쇄했을 때, 효자동 등 궁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는 경찰의 요구에 바로 내 반응과 같이 대응했다. 그들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고, 그 길을 막아서면서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들에게 분노했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주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고자 할 때 경찰이 막아서는 상황을 상상한다면, 그보다 더 크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종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신앙심보다 사회적 정의에 대한 요구가 앞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신앙심은 그 무엇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과는 사회 정의를 함께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다 더 정의로운 가톨릭'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심에 대해 직접적인 모욕을 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 일부의 사람들은 바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강남성모병원이 용역을 불러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한 사건에 대해 되짚어보자. 그 일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가톨릭의 이름으로 이럴 수가!'라고 경악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천주교를 자기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면 천주교회를 '진보적인 사회단체'중 일부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양자들 중 실질적으로 가톨릭 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지닌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가 아니라 전자에 속하는 이들이다. '어떻게 당신들이 이럴 수 있습니까!'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 천주교가 이럴 수 있습니까!'가 훨씬 더 강력한 목소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글루스에서 일부 '진보적'인 블로거들이 취하는 태도는, 어떤 면에서 다소 야비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자그니님이 쓴 "내쫓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를 살펴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이 천주교 신자 중 지금은 다소 멀어진 이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면서, 끝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홍길동'이라는 이름의 아버지를 지닌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을 '홍길똥'이라고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냉담자인 나는 신자가 아니라는데, 당신들 지금 나 내치는 거?'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것도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세례를 받으면 파문을 당하지 않는 한 천주교회의 일원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리고 자그니님은 파문까지 당해야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이 전혀 아니다.

보수적인 가톨릭 교리 속에서의 종교 생활과 진보적인 스스로의 지향성을 조율하고자 노력하는 다수의 신자들이 볼 때, 이런 태도는 '진보적'인 것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만을 불러올 뿐이다. 그의 글 제목에 담긴 질문에 대해, 자격은 없지만 내가 대답해보겠다. 내쫓는 것은 가톨릭이 아니다. 하지만 반박하는 것은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2000년의 역사를 통해 이단과, 종교 자체를 비아냥거리는 이들 모두에게 반박해 왔다. 바로 그 신앙심과 충성심이 명동성당을 성지로 만들어온 진짜 원동력이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특별한 패션인 양 목에 두르는 손수건처럼 천주교인의 소속을 들먹거릴 때, 그것을 가슴에 품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당신과 같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단 말이다.

천주교회는 소외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많은 신자들이 꾸준히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사회적 선행이 단 하나의 중요한 원동력, 즉 신앙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다. 만약 그것을 부정한다면 강남성모병원에서 벌어진 일을 비난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가톨릭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강남성모병원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완전'해진다.

같은 맥락에서 '성당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라는 식으로 명동성당의 시설물 보호 조치를 옹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나는 반대한다. 성당에서 조용히 해야 하고, 성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고, 미사 시간에 조용히 해야 하는 등의 기본적인 '예의'가 만약 오직 '인간에 대한 예의'라면, 우리는 강남성모병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납득해야만 한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자 환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입원했는데, 그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것은 그 '인간들'에 대한 예의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때로, 강자들에게만 유리한 무기로 사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윗사람'들이 보기에 더럽고 시끄럽고 무례하게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과연 '신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일까? 도리어 그 반대로, 정당한 노동에 대한 요구를 펼치는 이들을 때리고 쫓아내고 핍박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종교에 대한 진지한 자세, 신앙심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런 방향의 논의를 아예 시작할 수도 없다.

미사 시간에 확성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신부님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 시간은 수많은 신자들에게 실로 신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신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명동성당과 관련한 문제를 오직 인간에 대한 예의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보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종교적이지도 않다. 신자들이 하느님과 만나는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에 경찰은 성당에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바로 같은 이유로 시위대는 성당측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들은 그 신앙심 자체를 함부로 비아냥거리거나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체스터튼의 글을 인용하면서 내 부족한 논의를 마무리짓도록 하겠다.

18세기의 사회적 계약이론은 우리 시대의 여러 섣부른 비평에 나타나 있다. 모든 역사적 통치기구의 이면에는 찬성과 협동이라는 개념이 있다는 주장은 명백히 옳았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익을 의식적으로 교환함으로써 질서나 윤리를 얻고자 했다는 주장은 사실상 틀렸다. 도덕성은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네가 나를 때리지 않으면 나도 너를 때리지 않겠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아니다. 도덕성에는 그러한 거래의 흔적이 아니라, 두 사람이 "우리는 성스러운 곳에서 서로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한 흔적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지킴으로써 그들의 도덕성을 얻었다. [127쪽]
G. K. 체스터튼, 『오소독시: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경기도 파주: 이끌리오, 2003)
73p. Orthodoxy (San Francisco, U.S.: Ignatius Press, 1995)

덧글

  • 원래그런놈 2009/02/15 03:13 # 답글

    하지만 신에 대한 예의를 떠나 이번 시설경비 요청은 제가 보기에는 어느 정도 비판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도 신에 대한 예의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의 문제라 생각되고요.

    여하튼 링크 남기겠습니다. http://mrsunday.egloos.com/1365063
  • 노정태 2009/02/15 04:11 #

    시설 경비 요청에 대해 저도 비판적입니다. 요즘 경찰이 얼마나 우악스러운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들의 손을 빌리는 건 신자 입장에서 정말 탐탁치 않은 일이죠.

    링크 남기신 글 잘 읽었습니다. 관련이 있는 글이라고 판단하신다면, 트랙백을 보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그니 2009/02/15 03:37 # 답글

    ...휴. 제가 특별히 언급할만한 글은 아니어서, 간단하게만 몇가지 남기겠습니다.

    1. 하나님-이란 단어, 리플 달면서 단 한번 사용했습니다. ... 물론, 하나님으로 쓰건 하느님으로 쓰건 저는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다고 제가 생각하는 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2. 냉담자는 신앙인이 아니라고 어떤 분이 얘기하기에 추가로 언급한 내용일 뿐입니다. 성당에서 저를 파문하건 아니건, 역시 개의치 않습니다.

    3. 상대방이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저에게까지 적용시켜려고 한다면, 당연히 거부할겁니다.

    4. 스스로를 카톨릭이라고 생각해왔고, 엠네스티 회원이며, 진보신당의 지지자입니다. ... 그런데 스스로 왜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 이제 제 스스로 정리해야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 원래그런놈 2009/02/15 03:45 #

    이미 해결되고 지나간 문제가 이렇게까지 문제를 확산할 줄이야....

    하지만 저는 오히려(자그님에게 그 말을 하신 어떤 분에게 아주 떳떳하게) 신앙인이기 때문에 명동성당에 더 큰 책임과 비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길......
  • 노정태 2009/02/15 04:23 #

    자그니/ 제가 자그니님을 '작은이'라고 부르면서, "그런다고 제가 생각하는 분이 달라지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자그니님을 존중하는 겁니까 존중하지 않는 겁니까? 자그니님은 '존중'이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만 사용하시는 것 같군요.

    자기 자신을 놓고 (대단히 약한 강도의, 하지만 명확한) 인질극을 벌이시는 모습 또한 저를 불편하게 하네요.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원래그런놈/ 저는 냉담자와 신앙인에 대한 정의, 그에 대한 오해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인질로 삼아 '너희들이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가만 있지 않겠다'라는 자세를 취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위 답글에서 말한 것처럼, 저 또한 명동성당의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하고자 이 논의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 원래그런놈 2009/02/15 13:25 #

    노정태/ 저는 자그님의 블로그에서 있던 일을 생각해서 자그니님을 좀 위로해주고자 쓴 글입니다. 노정태님을 향해 한 말이 아닙니다. 오해가 있으셨다면 죄송합니다...
  • -_- 2009/02/15 23:20 # 삭제

    카톨릭(X)
    가톨릭(O)
  • 보다가 2009/02/15 03:50 # 삭제 답글

    역시 종교적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이군요. 다른 관점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 편협함이 지속되고 있는 터라 그 이상을 기대하기란 무리인것 같습니다.
  • 노정태 2009/02/15 04:22 #

    종교적 차원을 명확히 한 후에, 현재 갈라져버린 입장들을 종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보다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신 방문자께서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신다면 건설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 Y_Ozu 2009/02/15 12:09 # 삭제 답글

    노정태님의 의견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줄때도 많고 진보진영의 입장에선 대체로 수긍할만한 것인데도 이상할정도로 같은진영 안에서도 각을 세운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것 같습니다. 당위에 대한 지나친 자기확신적 언사와, 타협이 가능한 상대의 가벼운 오류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논박의 스타일이 필요 이상으로 팽팽한 갈등을 일으키는것 같아요. 논쟁하는 상대의 스탠스에 따라서 비판의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 노정태 2009/02/15 15:08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논쟁할 때에는 서로 제대로 칼날을 세웠다가, 공동으로 실천할 때에는 강하게 연대할 수 있으면 됩니다. 스스로의 당위를 주장하지 않을 거면 대체 왜 글을 쓰고 토론을 합니까? 저는 제 문제 제기에 대해 '네 말은 옳지만 나는 삐졌다'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봐 왔는데, 뭐랄까, 소인배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 드래곤워커 2009/02/15 13:38 # 답글

    저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신에 대한 예의에는 관심없습니다.
    다만,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지켜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시위자들의 행동은 예의에 어긋나는 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노정태 2009/02/15 15:10 #

    문제는 그 예의의 설정이 지나치게 가혹해져서는 안 된다는, 반대 방면에서의 문제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성당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 시설을 잘 써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만 남게 되면 명동성당은 한낱 강남의 대형교회들과 다를 바 없는 곳이 되고 말 테니까요.
  • 베른카스텔 2009/02/15 14:01 # 답글

    종교는 엄밀히 따지자면 누구에게나 즉각 납득되는 보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 안에서만 폐쇄적으로 생명력을 얻는 분화적인 이념이기 때문에
    분화 이념에 불과한 종교에 대한 존중은 민주적 다양성의 준수에서 나오는 상대적 소수 의사. 신념의 안전한 발현에서 그 가치를 빛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가침 사회 성역으로서의 신비적 권위에 접목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 관계상 어폐가 있습니다. 본래 분화 이념인 종교 영역은 그 분화 이념이 작동하는 모체로서의 상대적 보편 사실 영역에 공적 가치를 얻는 대신 활동 한계를 한정하는 선에서 타협을 하여 생존을 한 케이스이기에 을에 해당하는 종교에 갑이 되는 공권 개념에 절대적 성역을 주장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면 성역이라는 개념은 사회 구성원인 종교인들의 한계에서 비롯하므로 현실태가 아니라 이상향에 자리를 잡기 때문이며, 따라서 "어디 경찰 따위가 감히 천주교회의 일원에게 신원 확인을 한단 말인가"라는 노정태님의 노성이 격정의 표현이 아니라 당위로서 생명력을 얻을려면 '경찰 따위', '감히 천주교회의 일원에게'라는 수식은 거세하고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만을, 분화적인 이념을 믿는 자들에게 통용되는 논리가 아닌 보편 사실의 구조적 집합에서 살아가는 사회 주류에 방법적 오류, 목적의 정당성(만일 있다는 전제 하)만을, 설득할 대상인 갑에게 통용되는 갑의 논리로써 지적했어야 합니다. 이건 "어디 경찰 따위가 감히 산신령을 믿는 마실에 들어와서 신원 확인을 한단 말인가"로 바꿔 읽어봐도 대충 알 수 있는 이치죠. 공적 영역에서 한낱 산신령과 천주교가 달리 차별될 이유는 없거니와 설령 백번 양보해서 그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건 권력 투쟁에서 누가 패배했느냐 승리했느냐 정도로 사소합니다. 분화 이념인 종교를 믿는 인간에게 그 자신의 신념이 보편 사실보다 우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이는 분화 이념이냐 보편 사실이냐를 가리는 기준은 특정 모순 정합 욕망, 특정 기대 심리를 가진 욕구를 가진 동일인의 수량이기 때문이며, 이렇게 일견 단순 무식한 폭론으로 전개되는 보편 사실의 절대성을 분화 이념에까지 주장한다면 폭력이기에 '천주교회의 일원인 나의 우월함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가야 하는 목적의 우월함이다'이라는 말씀에는 심정적 공감을 누구나 표할 수 있겠지만 반면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신앙심은 그 무엇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과는 사회 정의를 함께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은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노정태님이 말씀하시는 그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보편 사실을 뛰어 넘는 분화 이념으로서의 분화 이념을 가진 자 내부에서의 우월성입니까, 아니면 믿는 자 내부의 외부에로의 권위적인 우월성입니까. 전자라면 상술한 바와 같이 충분 납득할 수 있는 합리이나 후자라면 오류 혹은 독선이며 반사회적인 도전인데, '천주교회의 일원에 경찰 따위'라는 문구 때문에, '신앙심에 직접적인 모욕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노정태님의 전자로서의 본질적 진의에 자꾸 노이즈가 엉켜 저에게는 후자로 오해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뺀 나머지로서의 노정태님의 글에는 부분적 공감을 표하게 됩니다.
  • 노정태 2009/02/15 15:13 #

    그런 격정적인 발화를 할 정도의 무언가가 아니라면, 명동성당을 경찰이 못 들어오는 성역으로 만들어낸 신앙심의 본질에 대해서도 전달할 수 없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 2009/02/15 20: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09/02/15 21:31 #

    사회의 부조리 안에 종교 그 자체가 포함되어 있구나, 적어도 이 사람들 생각에는, 그런 지점을 확인할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가치'가 그저 휩쓸려갈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못박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떻게 이런 말을. 2009/02/15 21:05 # 삭제 답글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신앙심은 그 무엇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말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합니다.
  • 노정태 2009/02/15 21:30 #

    그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 국무부에 득시글거리기 때문에 아랍의 정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이슬람교를 모욕하면서 이슬람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논리나, 가톨릭을 모욕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나, 뭐가 다릅니까?
  • black_H 2009/02/15 21:18 # 답글

    음... 상당히 독특한 견해를 잘 써주셨습니다.
    이부분의 포스트는 좀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것 같네요...
  • 노정태 2009/02/15 21:32 #

    이 메시지가 전달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추가적인 노력도 필요할 거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몰이해한 반응이 쏟아질줄은 몰랐습니다. 천천히 읽어주신다면 제가 더 감사할 일입니다.
  • black_H 2009/02/15 22:01 #

    예^^ 사실 대충 읽었는데 이거 제대로된 의견이라도 내놓을라면 좀 꼼꼼히 읽는게 필요할것 같네요~
    제 생각은 우선 정태님의 의견에 상당히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 rumic71 2009/02/15 21:38 # 답글

    신자가 아닌 저도 이 글의 논지가 팍팍 정리가 되는데, 명색이 신자라는 이들이 왜 난독들인지 알 수 없군요. 이 글의 논지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에 앞서서 말입니다.
  • 노정태 2009/02/16 02:51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전에 이해부터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지는군요.
  • sodan 2009/02/15 21:49 # 삭제 답글


    저는 제 문제 제기에 대해 '네 말은 옳지만 나는 삐졌다'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봐 왔는데, 뭐랄까, 소인배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어설픈 자기확신에 찬 님의 발언들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소인배가 바로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했는데요

  • 노정태 2009/02/16 02:51 #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더 이상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없군요.
  • sonofspace 2009/02/15 21:54 # 답글

    그들의 신앙에 존중을 표하지 않고서, 그들에게 신앙의 의무를 요구한다는 건 치사한 일이죠.
    그들이 믿는 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이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노정태 2009/02/16 02:53 #

    '우리에게 유리한 행동을 해주는 또라이 집단'으로 치부한다면야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까지 거친 의견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종교와 신성함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수준 자체가 낮은 것일 뿐이겠죠.

    감사합니다.
  • 맥스 2009/02/15 22:39 # 답글

    사람들의 반응은 그냥 간단해요. 신은 존중하기 싫지만 신의 자비는 이용하고 싶다는 거죠.

    아무리 말을 복잡하게 꼬고 논리적으로 반발하는듯 보여도, 결국 내심들은 그겁니다.

    종교인이 자비와 관용을 보이는건 당연하죠. 신의 가르침이니까요. 그러니까 신의 가르침을 이행하는 자들이 더욱 사회에 봉사하도록 만들려면, 신을 존중해야 한다는건 사칙연산 수준의 상식 아닌지요. 사람들이 참 말만 어렵게 하고 본질은 회피하는것 같아요.
  • 노정태 2009/02/16 02:54 #

    진보적인 성향의 가톨릭 신자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방금 말씀하신 바로 그런 것일 겁니다. 무턱대고 '가톨릭 실망입니다, 퉤' 이러는 태도는 당당하지 못한 것일 뿐더러 전략적으로도 현명하지 않죠.
  • 파파라치 2009/02/15 22:57 # 답글

    명동성당이 약자의 도피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사회 일반의 종교감정에 의해 보호되기 때문인데, 정작 도피하려는 사람들은 그다지 종교감정을 존중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군요. 타인의 선의를 이용하는 것은 참 나쁜 짓인데 말이죠.
  • 노정태 2009/02/16 02:55 #

    그래도 명동성당의 신자들은 그 '선의'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신앙심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내가 봐줬는데 너희는 왜 이러냐'라는 식의 오만으로 빠질 우려가 있는 것도 같고요. 균형을 잡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 -_- 2009/02/15 23:25 # 삭제 답글


    천주교인의 이런 거만한 자부심이 너무 좋다

    어디 경찰따위가 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을듯
  • 노정태 2009/02/16 02:55 #

    거만한 자부심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마저도 거만한 자부심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 또한 인정합니다.
  • 미스트 2009/02/15 23:30 # 답글

    글 읽다 문득 중세 카톨릭 최고의 명대사 중 하나가 생각납니다.

    "Caedite eos. Novit enim Dominus qui sunt eius."
    - 아르노 아모리, 시토 대수도원장
  • 노정태 2009/02/16 02:57 #

    알비겐시아 십자군의 발언을 중세 가톨릭을 대변하는 것인 양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라틴어 등 아는 사람이 극히 부족한 언어를 차용할 때에는, 번역을 함께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들을 죽여라. 주님께서 선별하실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 미스트 2009/02/16 12:32 #

    알비파십자군이 중세카톨릭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중세 카톨릭의 커다란 사건이긴 하죠. 저 대사는 저 과격성과 함께 성경 구절을 잘못 인용했다는 사례로도 자주 인용되지만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새로운 기사도를 찬양하며'에서 했던 발언들도 사실 저 발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베르나르가 당시 '교회의 양심'으로까지 불렸다는걸 생각하면 중세 카톨릭의 폐쇄성과 과격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합니다.
    십자군 전쟁 정도면 중세 카톨릭을 대표하는 사건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아무튼 본문에서 이단에 반박했다는 부분을 보고 알비파가 이단으로 몰려 학살당한게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 노정태 2009/02/16 13:22 #

    십자군 전쟁이야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고, 알비파 십자군도 적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야 없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모토가 중세 가톨릭을 '대표'할 수 있느냐는 거죠.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정통신앙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는데요. 설명이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습니다만.
  • 미스트 2009/02/16 14:18 #

    어, 음, 위에서 알비파가 이단으로 몰렸다는 말에서 알비파라는건 알비 지방에서 흥성하던 카타리파(=알비파)를 말합니다. 알비 십자군은 이 '이단'을 처벌하기 위해 형성된, 교황 인가를 얻은 십자군입니다.

    "모두 죽여라, 주께서 가려내실 것이다"
    라는 발언은 알비 십자군이 베지에를 공격하던 당시 (베지에에는 정통 카톨릭 교도와 알비파 교도가 섞여 살았는데) 이단인 알비파와 정통 카톨릭 교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는 병사의 질문에 대해 교황 이노켄티우스 3세의 특사이자 이단심문관이었던 아르노 아모리 대수도원장이 한 말입니다.
    그는 이후 교황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 병사들은 신분이나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도 빼놓지 않고 거의 2만명을 죽였습니다. 이 커다란 학살 후에 도시 전체를 파괴하고 불태웠습니다.....'라고 베지에의 학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 노정태 2009/02/16 15:59 #

    알비파와 알비겐시아 십자군에 대해서는 저의 혼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측에서 먼저 철학적 토론을 통해 카타리파 문제를 해결하려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죠. 지역 귀족들의 세력 중심으로 그 종파가 기능하고 있었던 것을 도외시한채, '민간인의 학살이 있었다'는 것만을 강조하는 것은 종교사를 보는 올바른 시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학적인 차이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세속의 전쟁과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띄기도 한 거죠.

    민간인의 희생을 정당화하거나, 일단 죽이면 그 영혼을 알아서 처리해 주실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점을 다루지 않는 것은 의아할 따름입니다. 이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사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가톨릭은 언제나 전쟁이 아닌 토론을 통한 해결을 우선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교도논박대전>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 미스트 2009/02/16 17:17 #

    성전기사단에 대한 재판이나 쟌 다르크의 재판 등에서는 세속 정치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야 하겠지만, 알비파 문제에서는 알비파가 지역 영주의 지지를 얻긴 했지만 이들 지역영주들이 알비파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세속적 투쟁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긴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중세 카톨릭 교회의 '평화로운 해결'이라는건 대체로 일방적 개종요구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올바른가 아닌가 하는 기준은 카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는건 그릇된 길을 고수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 뿐, 서로간의 입장을 존중하는 범위내에서의 타협 같은걸 추구하진 않았죠. 이단심문Inquisition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부정적 인식을 내포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요.)
  • 노정태 2009/02/16 19:10 #

    천주교의 '회유'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단 사상이 지니고 있는 논리적 허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올바른 신앙의 방도가 되지 못함을 입증하는 것이죠.

    가령 알비파를 봅시다. 그들은 이단답게 다양한 분파를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마니교적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었죠. 선이 실재하듯이 악 또한 실재한다는. 그렇다면 선한 신이 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는 악을 만든 또 하나의 전능한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거죠.

    악을 '실체'로 인정하면, 가령 인간의 육체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지게 됩니다. 이원론자들은 대체로 육체, 육적인 것, 물질 등을 악으로 보고 영혼, 영적인 것 등을 선으로 보죠. 따라서 육체를 지닌 우리는 죽어야 선해집니다. 이런 식의 신앙 구조 하에서는 인간의 삶이 온전하게 성립할 수 없어요. 우리가 왜 죄 많은 육체를 위해 밥을 먹어야 합니까? 싹 자살해버리는 편이 낫겠죠.

    반면 가톨릭에서는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자유의지에 의해 잘못 사용하는 것이 죄의 원천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소 속되게 말하자면 내 몸에 성기가 달려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함부로 굴리고 다니는 것은 죄가 되겠죠.

    이단 논쟁이 무슨 '너는 빨간 장갑을 좋아하고, 나는 파란 장갑을 좋아하고, 그러니까 나는 옳고 너는 틀리고 죽어라 에잇' 같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철학자, 즉 신학자를 보내 토론을 해왔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죠.
  • 미스트 2009/02/16 19:18 #

    문제는 신앙이라는 것이 논리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토론만으로 해결되기가 힘들다는 것이겠죠.
    비단 카톨릭 뿐만 아니라, 신앙이 얽힌 문제는 상당수가 폭력적 사태에 부딪히곤 했으니까요.

    ---
    김수환 추기경 님의 선종을 애도합니다.
  • ... 2009/02/15 23:37 # 삭제 답글

    이쯤에서 적절하게 마태오복음 22:21
    Cæsaris. Tunc ait illis: Reddite ergo quæ sunt Cæsaris, Cæsari: et quæ sunt Dei, Deo.
  • 노정태 2009/02/16 02:59 #

    윗분에게 드린 것과 같은 당부를 드릴 수밖에 없군요.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라고 써놓으셔도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의사소통에 중점을 두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hislove 2009/02/16 00:52 # 답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존중 없이 어찌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해 성립하는 성지'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것인지...

    '난 그래서 종교가 싫다'는 발언이 뻘플로 격하되는 이유는 별 것 아닙니다. '종교를 싫어한다면, 종교적 권위에 기대는 그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좀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카투사에 가서 편하게 군생활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죠. ㄱ-
  • 노정태 2009/02/16 03:00 #

    위에서부터 쭉 리플을 달면서 내려오다 보니, 비유하신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제가 대학교 학부에 다닐 때, 흔히 말하는 '주사파'였던 선배가 카추사에 들어가자 다들 피식거리고 비웃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 2009/02/16 01: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09/02/16 03:01 #

    감사합니다. 이해와 함께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 천체관측 2009/02/16 02:14 # 답글

    신을 믿고싶지 않지만 신에 대한 힘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모습입니다 ..

  • 노정태 2009/02/16 03:02 #

    굳이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존중해 달라는 거죠. 가톨릭 신자들이 '흥, 핏, 쳇'하고 있다면 가톨릭은 진작에 무너지거나 타락했을 겁니다.
  • 이새퀴 2009/02/16 02:33 # 삭제 답글

    진보적인척 하더니.

    수구꼴통 처럼 두리뭉실말하면서 진보 공격하네.
  • 노정태 2009/02/16 03:08 #

    이새퀴님, 바로 그런 태도가 '진보'를 우습게 보이게 만듭니다.
  • 이세벤 2009/02/16 04:29 # 삭제 답글

    교회를 다룰 때 '신앙심'이라는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관점에 대한 비판과, 교회를 옹호하는 측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네요. 흠냐.
  • 노정태 2009/02/16 11:46 #

    찬찬히 읽어보지 않고 관성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가정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 Sinny 2009/02/16 05:22 # 답글

    신은 어떤 사람들을 포용하고, 어떤 사람들을 내쫗나요.

    답변은 이미 하셨고, 답변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환기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말을 서두로 던집니다.

    결국 그러한 잣대의 끝은 종교를 이용하여 추구되는 인간의 이익에 닿아있지 않나요.

    저는 신의 뜻을 부정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님께서 말씀하시는 그것은 신의 뜻이 아닌 종교를 이용하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뜻이라는 겁니다.
    그걸 감히 신의 뜻이라 포장하고 숭고한척 하지 말고, 솔직하게 종교인의 이득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 님의 말을 부정합니다.

    저는 신의 존재와 그의 뜻은 인정하나, 종교는 부정하는 사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념은 종교의 본태적 근원 자체를 흔들어버리기에 별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한 종교인들에게는 제 관념을 굳이 강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를 상종못할 인간으로 치부하여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인간의 이득을 대변하는 알량한 종교적 발언을 신의 뜻이라 포장하여 거짓하지 마세요. 그건 또 하나의 죄악이라 생각됩니다.
    종교라는 개념을 원하고 좀 더 오래 지속되기 원한다면, 차라리 침묵해주시길 바래요.
  • Madian 2009/02/16 10:12 # 삭제

    신의 뜻이 아니라 신을 대하는 인간이 갖춰야 할 예의의 영역에서 논지를 풀어 나가는데 너무 앞서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노정태 2009/02/16 11:49 #

    Sinny/ "신의 존재와 그의 뜻은 인정하나, 종교는 부정하는 사고관"이라면 무교회주의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종교의 본태적 근원 자체"를 흔든다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종교를 형성하는 사고방식이죠. 그러므로 Sinny님을 상종 못할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무시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종교단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을 '이익'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그들이 종종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명동성당의 처우를 '신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감안해주셨으면 하고요.


    Madian/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02/16 11: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노정태 2009/02/16 11:52 #

    인터넷이 한국인들의 낮은 독해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인터넷 때문은 아닌 것 같고, 애초에 인터넷 이전에 주요 일간지가 논지를 형성해온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죠. 이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하고 싶습니다.

    '개독교'라는 단어가 곧장 '개톨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매도 분위기를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해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큰 틀에서 종교적인 차원을 중요시하고, 그래서 개신교가 지나친 반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어느 선까지 차단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문득 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익명 2009/02/16 15:14 # 삭제 답글

    세상에 종교가 있음으로 해서 좀 더 좋아진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가톨릭의 역사는 인종차별과 수탈의 역사로 알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 만큼은 그런 종교의 집회장소가 왜 민주화의 성지가 됐는지..
    그리고 그것에라도 매달려 보려는 힘없는 사람들을
    경찰력을 동원해서 떼어내려 하는 것은 전 그간 쓰고 있었던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노정태 2009/02/16 16:00 #

    종교가 없었다면 도덕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제가 말미에 인용한 글의 내용입니다. 우선 한 번 음미해주시면 어떨까요.
  • 익명 2009/02/16 19:56 # 삭제

    글쎄요...지금 와선 그와 같은 도덕이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또 식자의 권위를 빌려 그와 같은 명제에 힘을 실으려 하시지만, 그것이 검증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상상인지는 의문이군요.
  • 2009/02/16 17:12 # 삭제 답글

    수많은 댓글들에 일일이 대응하다가 귀중한 정신자원을 소모하는 건 아닌지 우려됩니다. 몇몇 오독,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하고 논의의 지평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댓글을 선택해서 거기에만 답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노정태 2009/02/16 19:12 #

    특히 종교 문제이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성의있는 답변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성적인 태도를 포기한 사람 앞에서 똑같은 태도를 보이면, 저 또한 이성적이지 않게 보일테니 말이죠.
  • 벽에다화풀이 2009/02/16 17:36 # 답글

    '개독교'라는 단어가 곧장 '개톨릭'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인 것 같습니다.

    이거 맞아요. 정말 천주교는 그동안 민주화운동에 적지않게 기여하였고,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 덕분에 이런 문제에 있어서 일종의 까임방지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씁쓸하다는.

    p.s 트랙백 했음.
  • 노정태 2009/02/16 19:14 #

    종교 자체에 대해 험악한 표정 짓는 것을 꺼리지 않는 사회에서, 천주교만 안 까인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이브했던 것 같아. 우린 생각보다 훨씬 팍팍한 사회에 살고 있었던 거지.

    트랙백한 글 잘 읽었음. ㅎㅎ
  • 꽃보다 몸 2009/02/16 18:43 # 삭제 답글

    댓글 과정에서 논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네요.

    물타기로 생각하실 수도 있고, 어쩜 맞을 수도 있지만
    이미 접점이 마련되었으니까 질문드립니다

    종교인의 세금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종교인의 납세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 변태 신앙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가 된통 혼이 난 경험이 있습니다 저를 혼내주신 그분도 정태님과 비슷한 언급을 하셨습니다.

    신앙은 사회적 제도에 우선한다 였던가.. 뭐 그런 말씀이셨습니다




  • 노정태 2009/02/16 19:15 #

    아뇨, 저는 그 방향으로 논의가 확장되는 것을 그다지 원치 않습니다.

    종교인의 세금 문제는 제가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그니님 블로그에서 오가는 리플 논쟁을 보고 있노라니, 그 문제에 대해 발끈하는 사람들조차 제대로 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런 덧없는 논쟁을 여기서 지금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제생각 2009/02/17 01:59 # 삭제 답글

    "종교를 존중하지 않으면 종교의 성지에 기대어서는 안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종교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성지에 자꾸 기대려고 하는 이 시대 운동의 단면이 안타깝습니다.
  • 노정태 2009/02/17 15:37 #

    그 곧은 정신 그대로, 가열차게 투쟁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야구소년 2009/02/21 20:51 # 삭제 답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 종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곳을 존중하지 않고 그야말로 '이용'하려는 것들은
    날건달이나 다름없겠죠. 흥미롭고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 노정태 2009/02/23 01:39 #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가 야구소년님께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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