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이 블로그에는 향후 추가적인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을 예정입니다.

예전에 썼던 구글 블로그에, 이곳에 올린 글 중 일부와, 그 외 다른 곳에서 업데이트한 것들을 모았습니다. 앞으로는 그 쪽을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저는 이 블로그의 덧글을 그리 자주 확인하지 않습니다. 제게 전달하실 말씀이 있으면 위에 링크된 블로그에 덧글을 남기시거나, 제3자가 보는 것을 원치 않을 경우 이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이메일 주소는 basil83 at 지메일닷컴 입니다.

2010.10.10 - 2012.07.18

2012년 7월 19일부로 저는 다시 민간인 신분이 되었습니다. 몇몇 분들의 기대 섞인 우려, 혹은 우려 섞인 기대와 달리, 단 하루의 추가 복무 없이 병장 만기 꽉 채우고 나왔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간략하게 몇 가지 항목만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군 복무 형태는 카투사, 근무지는 미 2사단 1여단 모 대대 모 중대, 병과는 통신병입니다. 몸 쓰는 일과 머리 쓰는 일을 골고루 다 하며 후회 없는 군생활을 하다가 나왔습니다.


2. IOTV 입고 뛰어다니고 통신망 설치하는 것 외에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2-1. 『마이크로스타일』 번역 및 출간.

2-2. 《프레시안북스》에 서평 기고.

2-3. DOMINO 동인 활동.


3. 이 블로그는 2011년 8월 17일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날 제가 2사단 지역대에 소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군인의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이우람'이라는 분이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습니다.

보시면 아시다시피 저 글은 '정치의 이론적 해석'에 대한 글이지 '정치적 지지나 비난'을 담고 있지 않으므로 큰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습니다만, 최장집이나 손학규 같은 실존 인물이 거론되고 있으며, 어쨌건 민원이 들어왔으니 뭔가 조치가 취해지기는 해야 한다는 이유로 블로그 폐쇄를 지시받고 그 당일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4. 물론 군대는 군대니까 모든 게 다 쉽거나 재미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나이가 많은 채 군대를 간 덕에 논산훈련소와 KTA(KATUSA Training Academy)는 쉽게 넘겼지만, 자대에 가보니 얘기가 좀 달랐습니다.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한 불굴의 이성이 본인의 처지마저도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개인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당시 썼지만 공개하지 않은 다음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겠습니다.

"지배하지도 지배당하지도"(2011년 1월 16일)


5. 하지만 그것도 이른바 '짬'을 좀 먹으니, 대략 일병 꺾이고 난 다음부터는 별 문제 없이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01학번인데, 저보다 많게는 열 살 정도 어린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이른바 '이중의 시차'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어느 시점부터는 선임이건 후임이건 다 제 밑으로 동생들이 되고 말았지만, 저는 워낙 스스로에게 엄격한 탓에 특정 시점을 넘기까지는 함부로 말을 놓고 하대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군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6. 본연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논객질'이라는 특정한 활동의 범주가 있습니다. 다들 군대 오면 비로소 '대중'의 존재를 느끼고 논객질의 한계를 고민한다던데, 저는 카투사라 그런지 학력은 높지만 지성은 미숙한 다수의 고학력자들이 새로운 차원의 '계몽'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무튼 돌아왔습니다. 고전 명작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며 이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냉소주의?

박가분 님의 "최장집주의자들에게 답한다 - 왜 최장집의 이론은 오늘날 하나의 유혹인가?"를 읽고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 박가분 님 혹은 다른 분들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하 존칭은 생략한다.

박가분은 최장집의 정치적 태도를 냉소주의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최장집은 정당정치의 회복을 통한 민주주의의 진전을 꾀하면서도, 정작 실천적으로는 손학규라는 '철새 정치인'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이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가분이 제시하는 냉소주의라는 개념의 정의가 그렇다면 읽는이로서는 우선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그는 이러한 방식의 냉소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런데 박가분이 쓴 다른 글을 펼쳐보면, 그것에서 박가분이 제시하는 현실에 대한 해법 역시 같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평도 이후 - 민족주의의 재발명을 위하여"를 보면, 박가분은 북한에 동조적이지 않은 한국의 진보파들 역시 '분단모순'을 우회할 수 없으며, 남한과 북한의 민중들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진보파들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입장을 편다.

정당정치의 개혁이 정당정치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또 실제로는 완벽하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쨌건 정당정치 내의 어떤 현실정치인을 지지하는 최장집의 선택이 '냉소적'이라면, 마찬가지로 분단모순 속에 살아가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완벽하게 그러할 수 없으며, 그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시인 김수영처럼 '김일성 만세다, 이 개새끼들아'라고 외치는 행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후자를 권유하면서 전자를 비판하는 행동은, 적어도 내 눈에는, 비일관적으로 보인다. 양자 모두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현실 '속에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실천적 행위의 양태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장집이 손학규를 지지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평을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정치학자가 집어들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이긴 하다.)

이 의문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는 박가분의 '냉소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엄밀하지 않거나, 혹은 자체적으로는 확고한 용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용될 뿐인 그러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의문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철학, 혹은 '이론'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나의 지식과 이해가 미흡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단 떠오르는 의문을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그리 현명한 행동이 아니므로, 기록을 겸하여 블로그에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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